盧대통령 “진급비리 수사 여론몰이 말고 계속하라”

  • 입력 2004년 12월 15일 1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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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5일 육군 장성 진급인사 비리의혹 사건 수사와 관련해 “수사 상황을 공개해 여론의 힘을 입어 수사를 진행하는 관행은 적절하지도, 적법하지도 않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윤광웅(尹光雄) 국방부 장관에게서 업무보고를 받으며 이같이 밝히고, 그러나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수사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진급인사 비리의혹 수사 과정에서 육군과 마찰을 빚으며 수사 상황을 언론에 흘리는 국방부 검찰단과 수사에 비협조적인 육군을 동시에 경고한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이어 “군에 대해 확고한 믿음과 기대를 갖고 있으며 이번 사안을 윤 장관이 책임을 지고 잘 관리하도록 당부했다”고 신현돈(申鉉惇) 국방부 공보관이 전했다.

윤 장관은 이날 김종환(金鍾煥) 합동참모의장과 육해공군 참모총장, 각 군 군단장급 주요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노 대통령의 발언을 전달했다.

이에 앞서 남재준(南在俊) 육군참모총장은 13일 주한미군 주최 만찬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충남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서울 공관으로 올라왔다가 유효일(劉孝一) 국방부 차관과 만나 인사 비리의혹 수사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유 차관은 이날 남 총장의 서울 공관을 방문해 “군 검찰의 수사 내용 공개와 육군의 반발이 양측의 갈등으로 비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고, 남 총장은 “군 검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본 뒤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남 총장의 발언 중 ‘필요한 조치’란 군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한 인정과 잘못된 인사 시스템의 개선이라기보다 법정 공방 과정에서 육군의 적극적인 소명 또는 반박을 의미한다는 게 군 안팎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별들은 말이 없지만…'軍 주요지휘관회의 표정' ▼

육군 장성 진급인사 비리의혹 사건에 대한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1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회의는 시종 긴장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회의 시작 전 윤광웅(尹光雄) 국방부 장관과 김종환(金鍾煥) 합동참모본부 의장, 남재준(南在俊) 육군참모총장은 짧은 인사를 나눈 뒤 윤 장관의 오른쪽에 김 의장이, 왼쪽에 남 총장이 각각 자리를 잡았다.

회의에 참석한 일부 중장들은 군 검찰 수사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어려운 것은 묻지 마라” “일단 지켜보자”며 답변을 아꼈다.

국방부 안팎에서는 이번 회의에서 군 수뇌부가 군 검찰 수사에 대한 의견을 장관에게 전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윤 장관이 회의 초반 훈시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전달하자 모두 숨죽인 분위기였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노 대통령이 군 검찰의 수사에 대해 “여론의 힘을 입어 수사하고 있다”고 질책한 부분에 대해 상당수 장성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관계자는 “군 검찰이 수사 내용을 언론에 흘리는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군은 믿을 수 없는 조직’이라는 인식을 심어 줬다”며 “청와대가 이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노 대통령의 발언 이후 군 검찰의 수사 방식에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군 검찰은 앞으로 수사 내용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을 방침이다. 이 때문에 육군이 수사에 비협조적인 자세를 보이는 게 아니냐고 군 검찰은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군 검찰의 수사를 ‘적법하다’고 평가한 데 대해서는 군 수뇌부도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8월 전군 주요지휘관회의 때 노 대통령은 군 수뇌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청와대 오찬 대신 윤 장관 주최 오찬 행사만 열려 노 대통령이 모종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한편 유효일(劉孝一) 국방부 차관은 13일 서울의 육군참모총장 공관(서울과 충남 계룡대 2곳에 있음)에서 남 총장과 만나 군 검찰과 육군의 충돌을 자제토록 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고 신현돈(申鉉惇) 국방부 공보관은 전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자칫 육군 수뇌부에까지 수사가 확대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들이 만난 것에 대해 적절치 않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최호원 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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