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사장 공모제]무늬만 公募制… 외부입김에 흔들

  • 입력 2004년 11월 28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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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거래소 초대 이사장 선정이 외압설 제기와 최종후보 사퇴 등으로 얼룩지면서 공기업 사장 등을 공개모집하는 ‘공모제’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확산되고 있다.

정치권과 관련 부처 등의 간섭을 배제하기 위해 도입된 공모제가 당초 도입 취지와는 달리 외부 입김에 흔들리는 등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무늬만 공모제인가=정부 투자기관이나 유관기관장에 대한 공모제는 1999년 공기업 주무부서인 기획예산처가 공기업 경영혁신 차원에서 처음 도입했다.

2003년 현 정부 출범 이후 공모제를 대폭 확대해 주요 기관장들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원서를 받아 후보추천위원회에서 후보를 추천하도록 했다. 낙하산 인사를 배제하고 외부의 유능한 인재를 충원하자는 ‘인사 개혁’ 차원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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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기관장 공모제 본격 도입 이후 일부 공기업에서는 예상치 못한 인사가 사장에 선임되는 등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율’을 강조하는 시스템을 표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렇게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논공행상(論功行賞) 차원에서 정치권 출신들이 공모 절차를 거쳐 공기업 사장으로 선임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박양수(朴洋洙)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전 열린우리당 사무처장), 공민배(孔民培) 대한지적공사 사장(17대 총선 열린우리당 출마, 경남 창원갑), 송인회(宋仁回)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전 열린우리당 정책위 부의장) 등은 모두 공모 절차를 거친 정치인 출신이다.

▽공모 절차 허술하다=외부의 입김과는 별도로 현재의 공모 절차가 부실하다는 지적도 많다.

추천위원 구성도 해당 분야의 전문성보다는 명망가 위주로 구성되며, 공모할 때 제시하는 후보의 자격요건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심사기간도 너무 짧다는 것이다.

양만기(梁萬基) 전 수출입은행장은 “영국 주재 수출입은행 법인장을 발령낸 적이 있었는데, 영국 중앙은행이 2개월 이상 꼼꼼히 심사한 뒤 이를 허가했다”며 “지금처럼 일주일 정도 걸리는 심사로는 후보자의 자격을 충분히 심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공기업 사장 추천위원으로 활동했던 한 인사는 “후보자 자격요건이 구체적으로 명기되지 않아 정작 실력이 있는 후보자들은 지원하지 않고 ‘정치력이 있는’ 사람들만 무더기로 지원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공모제 실시 이후 추천위원들이 지원한 후보자들의 ‘청탁전화’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실제로 이 같은 ‘청탁전화’는 이번 통합거래소 이사장 선출과정에서도 확인되기도 했다.

▽적극적 심사가 필요하다=우선 공모제 자체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의 공모제 아래에서는 실제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지원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능력이 있는 인재들이라고 해도 몇 차례 공모에서 떨어지면 ‘염증’을 느껴서 제대로 된 자리가 있어도 지원조차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또 추천위원들이 지금처럼 수동적으로 지원자들만을 대상으로 심사한 뒤 추천할 것이 아니라 해당 분야에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해서라도 데려오려는 ‘적극적인 심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야당-청와대 반응…野“진상 철저 조사”-靑“李부총리 소관”▼

한나라당은 28일 통합거래소 초대 이사장 선임 과정에서 불거진 청와대 외압설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국회 관련 상임위에서 진상을 파헤치겠다고 전의를 다졌다.

김덕룡(金德龍)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운영위에선 청와대 관계자가 이사장 추천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압력을 행사했는지를 따지고, 재경위에선 이사장 후보로 추천됐던 인사 3명이 한꺼번에 후보를 사퇴한 경위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김형오(金炯旿) 사무총장도 “통합거래소가 제대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이사장 선임 문제로 거래소 출범이 지연된 데 대해 관련자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당 차원의 진상규명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이 문제는 다음달 9일까지 계속될 정기국회의 주요 쟁점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또 이번 외압설 파동을 노무현 정부 전반에 걸친 ‘낙하산 인사’ 문제와 연계시켜 정부 인사 시스템의 구조적인 개선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청와대 개입설을 일축했다.

정찬용(鄭燦龍)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은 “청와대에서 (통합거래소 이사장 인사에) 관심은 있지만 관여하고 있는 바는 전혀 없다”며 “거래소 이사장 인사는 절차상 경제부총리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 수석은 “이번 일과는 무관하지만 정부 부처 공무원 출신들이 관련 분야에서 독식을 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여운을 남겼다. 이는 ‘모피아(MOFIA·재정경제부 출신을 마피아에 빗댄 표현)’의 거래소 이사장 선임에 이의를 제기한 셈. 이번에 거래소 이사장 후보를 사퇴한 3명은 모두 재경부 출신이다.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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