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욕하면 제 무덤 판뒤 매장”…찰스 젠킨스 증언

  • 입력 2004년 11월 4일 22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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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군 탈영병인 찰스 젠킨스(64)가 3일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자마(座間)기지에서 열린 주일미군 군법회의에서 40년간의 북한생활을 회고하며 “북한의 생활수준이 19세기로 후퇴한 것과 같다”고 밝혔다.

그는 또 “생활이 너무 힘들어 죽고 싶어지곤 했다. 할 수만 있다면 39년 전 탈영하던 그날 밤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젠킨스씨는 이날 군법회의에서 30일간의 금고형과 불명예제대 처분을 받았다. 일본 정부는 그가 금고형을 마치고 나오는 대로 가족과 함께 일본에서 살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다음은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가 전한 젠킨스씨와 부인 소가 히토미(일본인 납북자)의 진술 내용.

“1965년 탈영한 후 1972년까지 미국인 3명과 공동생활을 하면서 하루 10시간씩 주체사상을 학습했다. ‘한 미친 남자의 관점에서 본 집단 투쟁’ 정도로 기억되는 김일성 관련 글을 외워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 표현하면 북한에서는 사형감이다.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한 번이라도 비판하면 가차 없이 죽음을 당한다. 직접 땅을 파고 매장당하는 사람도 봤다.

평양 집에는 난방시설이나 전기가 없어 겨울에는 있는 옷을 다 껴입고 잠을 자야만 했다. 뜨거운 물로 목욕하는 것은 아주 드문 사치였다.

밤에는 촛불을 켜고 글을 읽다가 초가 다 타면 남은 촛농을 모아 새 초를 만들었다. 배급제도가 붕괴돼 집 뜰에서 채소를 재배하고 닭을 길렀지만 허기진 채 잠드는 경우가 많았다.

안내인 없이는 집을 나설 수 없었고, 집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일상생활은 항상 감시당했다. 동료 한 명이 천장 속에 감춰진 도청 마이크를 발견한 적도 있다.

책을 구할 수 없어 지니고 있던 금지된 역사소설 ‘쇼군(將軍)’ 한 권을 20번도 넘게 읽었다. 나중에는 북한의 라디오를 다룰 수 있게 돼 몰래 BBC나 미국의 소리방송을 들었다.

북한은 반미 감정도 극심하다. 하루는 병원으로 끌려가 간호병들이 팔을 묶고 마취도 하지 않은 채 ‘미군’이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던 어깨 피부를 벗겨내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 소가 히토미를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전기가 들어오고 수돗물이 나오는 평양 시내 집으로 이사도 했다.

1981년부터 대학에서 동료 3명과 함께 영어를 가르치게 됐다. 못하겠다고 하면 지방으로 쫓겨 가 다시 고생스러운 생활을 하게 될까봐 무서웠다. 그렇게 된 사람을 여럿 봤다.

한번은 교실에 가기를 거부했다 묶인 채 두들겨 맞았다. 상처가 심해 20일간 출근하지 못했다. 1985년 영어교사에서도 쫓겨났다. 나의 영어가 북한 사투리화됐다는 게 이유였다.

북한에는 미국과 같은 자유가 없다. 북한에 들어간 지 하루 만에 내가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달았다. 40년간 소식이 없어 괴로워했을 가족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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