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호 칼럼]물과 바다, 헬라스와 한반도

  • 입력 2004년 8월 25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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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대회가 근대 올림픽의 근원지였던 아테네로 108년 만에 돌아가 다시 열리고 있다. 축제가 그 근원으로 회귀한 것이다.

지난 13일 밤에 열린 아테네 올림픽의 개막 축전, 새벽잠에서 깨어 TV로 구경한 이 축전은 이번 올림픽이 갖는 이러한 역사적, 철학적 의미를 신선한 착상과 기발한 연출로 보여주었다.

흙이 있을 곳에 물이 있었다. 땅이 있을 곳에 바다가 있었다. 올림픽 주경기장을 물이 출렁이는 바다로 둔갑시킨 것은 압권이었다. 물을 보여줌으로써 이제 ‘근원으로의 회귀’는 올림픽 대회의 주제를 넘어 뭇 생명의 주제로 승화되었다.

▼아테네… 근원으로의 회귀▼

삶의 근원인 물. 서양사상사의 첫 장에 등장하는 헬라스(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는 기원전 6세기에 물을 만물의 근원으로 설파했다. 그로부터 2600년이 지난 지금도 우주탐사선이 지구 밖에서 목마르게 찾는 것은 다름 아닌 생명의 근원인 물의 흔적이다.

물이 넘실거리는 올림픽 주경기장 위에 사랑의 여신 에로스가 날개를 펼치자 반라의 젊은 남녀 한 쌍이 신선한, 아니 신성한 육감적 뒤엉킴의 춤을 추며 바닷물 속으로 잠겨 들어간다. 생명 탄생의 근원으로의 회귀.

개(個)의 발생은 종(種)의 발생을 반복한다던가. 생명이 바닷물에서 태어났듯 사람은 저마다 어머니의 모래집물(양수)에서 태어난다. 그러한 생명의 근원인 물을 경기장 그득히 보여주었던 것이다.

지금은 처참한 전쟁터가 된 이라크는 인류문명의 한 발상지인 바빌로니아의 고지. 지구 위에 건설된 최고(最古)의 대도시 바빌론도 거기 있었다. 기원전 6세기에 이 도시를 둘러쌌던 성벽과 성문이 19세기 말 발굴돼 일부가 지금은 베를린의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장장 수백m 길이에, 10m를 헤아리는 높이의 성벽과 성문이 온통 감청색 유약을 칠한 벽돌로 축조돼 사막 위에 위용을 과시했던 그 거대한 파란 빛깔! 파랑은 물을 뜻하고 물은 곧 생명을 뜻한다는 것이 가이드의 설명이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자 문명의 근원이다.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나일 강, 그리고 황하가 인류문명의 근원지들이다. 물은 또 힘의 근원이기도 하다. 경기장의 지친 선수들이 우선 찾는 것도 물이다. 세계를 지배한 민족은 예외 없이 바다를 지배했다. 헬라스의 아테네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화란(네덜란드)과 영국이 그랬다. 지난 세기까지 세계를 지배했던 유럽은 가장 작은 대륙이지만 어느 스위스 역사학자의 말처럼 ‘가장 해양적인 대륙.’ 그 해양이 유럽을 유럽으로부터 떠나게 함으로써 소유럽은 대유럽이 되었다.

작은 아테네나 작은 한반도도 바다가 사람을 육지에서 떠나게 할 때 큰 시대가 열렸다. 헬레니즘의 시대, 장보고의 시대…. 그러고 보면 다같이 반도 국가인 한국과 그리스는 닮은 데가 많다. 20세기 한국의 철학자 박종홍은 1956년 여름 아테네를 방문한 인상을 이렇게 메모했다. “새벽에 근처 산에 오르다. 산정에는 돌, 솔, 먼지, 하늘, 메마른 땅…. 행상, 마늘 장사….” 그건 그대로 당시 한국의 풍경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해운 왕 오나시스의 그리스, 조선 왕 정주영의 한국, 터키와 일본의 지배에서 해방된 두 나라가 지난 세기부터 다시 세계를 향해 기지개를 펴게 된 것은 바다를 지향한 기업인들 덕이었다. 대륙세력(소련, 중국)과 동맹한 북한은 황폐해가고 해양세력(미국)과 동맹한 남한은 번영하고 있다.

▼닮은꼴 한국-그리스▼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믿을 수 없는 ‘동족공조’를 위해 믿을 수 있는 대외 동맹을 물리자는 것인가? 중국 제일주의? 대외 관계를 바다에서 등 돌려 대륙으로 돌리자는 것인가?

강변이 아니라 산골로, 해양이 아니라 내륙으로, 외부가 아니라 내부로? 그러기 위해 밖의 침략자를 따지기보다 내 안의 부역자부터 따지자는 것인가? 미래에 등을 돌리고 과거로, 그것도 외부가 아닌 내부의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인가?

“내부로 향하는 데에서 모든 혼란은 시작된다.”

최정호 객원大記者·울산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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