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민생 전념’ 또 빈말이어선 안 된다

  • 입력 2004년 8월 23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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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내부에서 “과거사 문제보다 경제 살리기가 중요하다”는 목소리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김혁규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은 당 회의에서 “우리가 역사 바로 세우기에 열심이지만 국민 여론은 국정의 우선순위를 잘못 잡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헌재 경제부총리와 386의원들의 오찬 모임에서도 “(경제 회생을 위해) 내수부진 극복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한다. 그런데도 다수 국민의 눈에는 여권이 경제는 제쳐두고 과거사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처럼 비치고 있다.

김우식 대통령비서실장도 기자 간담회에서 “사람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라면서 이를 대통령에게도 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쯤 되면 청와대, 당, 정부가 혼연일체가 돼 경제 살리기에 나서고, 이런 모습이 국민의 불안감을 덜어 주면서 소비와 투자심리를 부추길 법도 하지만 사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문제는 신뢰다. 경제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어디 한두 번 했는가. 노무현 대통령부터 올해 첫 기자회견에서 “최고 복지는 일자리 창출”이라고 했다. 이해찬 총리가 “경제 활성화와 내수 진작이 가장 큰 국정현안”이라고 한 게 이달 초다. 하지만 달라진 게 무엇인가.

노 대통령은 8·15경축사의 대부분을 과거사 규명에 할애했다. 국가기관이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고백하라고 촉구해 관련 부처에선 ‘고백성사’ 방법을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집권당의 신임 의장은 야당을 ‘가해 세력’으로 규정함으로써 과거사 논쟁을 정치공방으로 격하시켰다. 이러고도 입만 열면 경제요 민생이니 누가 이를 믿겠는가.

과거사 문제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여야가 독립기구에서 다루기로 합의한 만큼 전문가의 손에 맡기고 경제에 전념함을 행동으로 보여 줘야 한다. ‘민생 전념’이 또 빈말이어서는 국민의 실망과 분노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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