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박근혜 국가 정통성 거론할 자격 있나"

  • 입력 2004년 8월 16일 15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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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평론가 진중권씨는 “박근혜 대표는 ‘해적판 헌법’의 신봉자로 국가의 정체성을 거론하기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다”고 비난했다.

진 씨는 최근 국제신문에 기고한 ‘정품헌법과 해적판 헌법’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박 대표가 ‘정체성’ 논란에 불을 지핀 이유는 제1야당의 대표로 뽑혔으니 그 기념으로 현직 대통령에 맞서는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한다는 것과, 느닷없는 이념 논쟁을 벌여 당의 안팎으로 제 입지를 굳히겠다는 계산이다”고 주장했다.

진 씨는 “우리사회에는 두 가지가 헌법이 있다”며 하나는 온 국민의 합의로 씌어진 대한민국의 성문헌법, 다른 하나는 눈이 오른 쪽으로 심하게 쏠린 우익 가자미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불문헌법" 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품 헌법’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3·1 운동’ ‘4·19 민주이념’ ’민족의 단결‘ ’세계평화‘ 등에서 찾는 반면 ‘해적판 헌법’은 ‘5·16 쿠데타’ ‘국가보안법’ ‘한미동맹’ 같은 데서 국가의 정체성을 찾는다”며 “이렇게 헌법이 둘이다 보니 국가의 정체성을 놓고 늘 논란이 벌어지는 것이다”고 했다.

진 씨는 “지금 나라의 정체성을 바로잡겠다고 설치는 분들의 정신상태는 헌법이 규정한 4·19 민주이념은 안중에도 없고, 외려 헌법에 들어있지도 않은 5·16 쿠데타에서 이 나라의 정체성을 찾으려 한다”며 “툭하면 국가의 정체성이 어쩌고 하는 그 분들이 정작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잘못 알고 있다”고 힐난했다.

진 씨는 박 대표는 ‘4·19 민주이념’으로 쓴 공식 헌법보다는 5·16 정신에 바탕을 둔 사제(私製) 헌법을 더 신봉하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한 뒤 “아무리 생각해도 박 대표는 국가의 정체성을 거론하기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다”고 했다.

이어 “박 대표의 정치적 후광을 이루는 박정희는 관동군 중위로 히로히토에 복무하고, 남로당 군책으로 김일성에 충성하다가, 5·16 쿠데타로 헌정을 파괴하고, 유신으로 자유주의 체제를 부정했던 분이다. 이 화려한 행적 중 과연 어느 게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부합한단 말인가?”라고 물었다.

진씨는 “최근 우익 가자미들이 '사제 헌법'으로 대한민국을 공격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며 “이 우익 광란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려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뒤흔드는 해적판 헌법부터 잠재워야 한다. 헌법은 웬만하면 정품을 쓰자”고 주장하며 글을 맺었다.

그는 이 글을 쓰게된 배경에 대해 “박 대표가 최근 ‘내전 선언’을 철회했지만 이왕 국가의 정체성에 의혹이 제기되었으니, 이런 소모적 논란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참에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자”고 서두에서 미리 밝혔다.

박해식 동아닷컴기자 pisto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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