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송위원회 유감

  • 입력 2004년 7월 11일 18시 37분


방송위원회가 탄핵방송 심의를 기각하기로 결정한 후 연일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탄핵방송이 과연 방송위의 심의 대상이 아닌가 하는 문제, 두 번째는 방송위가 무엇 때문에 심의할 수 없다는 결정을 언론학회 용역작업이 끝난 3개월 뒤에야 내렸는가 하는 점이다.

▷첫 번째 사안에 대해 방송위는 사실상 두 번 결정을 내렸다. 1차 결정은 3월 말이었다. 방송위가 언론학회에 공정성을 조사해 달라고 요청한 것은 탄핵방송이 정당한 심의 대상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6월 중순 분석 결과가 나오자 방송위는 전혀 다른 결정을 내렸다. 탄핵방송 전체는 심의 대상이 아니므로 프로그램별로 심의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방송위는 이 같은 번복의 근거로 심의 규정을 내세웠는데, 이 설명을 받아들인다면 방송위원들의 직무 전문성은 자신의 기본업무 내용조차 모르는 수준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방송위가 학회 보고서를 보고난 후 기각 결정을 내린 점은 보고서의 결론이 1차 결정을 뒤집게 했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총선과 탄핵 심판이 마무리될 때까지 예민한 사안을 다루지 않고 시간을 벌기 위해 언론학회를 이용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국가위원회는 전문성과 다양성, 투명성에서 나오는 도덕적 권위로 지도력을 발휘한다. 그 같은 국민의 여망으로 방송위는 방송의 공영성을 지탱하는 보루로 기능해 왔다. 위원들은 대통령과 정당 추천으로 구성되지만 국민이 바라는 것은 정파적 이익의 관철이 아니다. 주요 쟁점이 있을 때 아무 일 없다는 듯 덮어버리라고 장차관급 대우를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370여개의 국가위원회가 있다. 대통령이 직접 관장하는 위원회가 62개, 부처별로 운영되는 위원회는 310여개다. 이런 위원회들이 민주적 정치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기여한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 방송위에 이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간첩을 민주화 기여자로 판단해 파문을 일으켰다. 과연 우리의 위원회들은 제 기능을 하고 있는가. 위원회를 다시 생각하는 위원회라도 만들어야 하는가.

이재경 객원논설위원·이화여대 교수·언론학jklee@ewha.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