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피살]“점령 아닌 재건목적 파병 홍보 부족했다”

  • 입력 2004년 6월 23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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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무장단체에 의한 김선일씨 살해사건을 계기로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를 포함해 중동지역 국가들과 향후 어떻게 관계 설정을 해나가야 할지가 한국 외교의 과제로 등장했다. 본보는 이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기 위해 서재만(徐在万·64) 한국외국어대 교수와 이원삼(李元三·46) 선문대 교수의 긴급 대담을 마련했다. 두 사람은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 중동지역 내 정부 및 민간의 허술한 외교채널과 이슬람에 대한 이해 부족, 정부의 성급한 파병 강행 방침 발표 등 세 가지를 지적했다. 또 ‘점령이 아닌 재건’ 목적의 파병이라는 점을 이라크 국민에게 충분히 각인시킬 수 있어야 추가 테러를 방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담은 23일 오후 본사 14층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이원삼 교수=죄송스러운 말이지만 나는 결과가 이렇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협상시간으로 24시간만을 준 것은 사실상 ‘살해하겠다’는 뜻이었다. 이라크 내 무장단체들은 6월에 납치한 사람들 모두를 죽였다.

▽서재만 교수=이왕 이렇게 된 이상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 오늘 만난 한 택시운전사는 “정부가 죽인 것”이라고 흥분했다. 이런 접근은 잘못된 것이다. 테러집단의 요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정부를 비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 교수=살해 원인을 따져보면 무장단체는 크게 두 가지를 요구했다.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 파병 철회와 서희·제마부대의 철수가 그것이다. 그러나 꼭 이것만이 살해의 원인이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이라크는 현재 주권이양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대중동정책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려는 목적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서 교수=동감한다. 이 무장단체가 조직된 지 얼마 안 되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사건으로 이라크 내의 관심을 모아 자신들이 새 정부 구성에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 같다. 또 다른 측면에서 나는 이번 사건을 우발적인 사고라고 생각한다. 김선일씨를 표적으로 삼아 납치를 한 것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당초엔 미군 납품회사가 타깃이었는데 우연히 한국 사람이 걸려든 셈이다.

▽이 교수=한국인을 선택한 것은 의도적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추가 파병 철회와 기존부대 철수를 주장한 것은 이미 서희·제마부대가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증거이다. 결국 미국 영국 다음으로 대규모 병력을 파병하는 것을 의식해 김씨를 납치 살해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서 교수=이라크 파병에 대한 홍보 부족과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이 큰 문제라는 생각이다. TV 화면에서 제마부대의 의료활동 모습이 방영됐는데 가건물에 적십자 마크가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적십자는 이라크 사람들에게는 십자군을 떠올리는 상징이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하더라도 이라크인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는 요인이다. 현지인의 문화적 배경과 생활습관에 대한 배려 없이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 교수=다른 예를 보자. 한국은 한국군의 파병을 이라크의 평화재건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인들은 한국군을 미국의 동맹군 정도로만 보고 있다. 이 같은 인식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서 교수=문제는 김씨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이 교수=맞다. 김씨를 살해한 무장단체는 TV에서 공공연하게 추가 파병 철회 및 주둔군 철수를 안 하면 군인들도 살해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국군에 대한 테러 가능성도 높다. 특히 한국군 파병 예정지는 지금은 소요사태가 별로 없지만 이달 말 이라크 과도정부가 출범하면 가장 위험한 지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쿠르드족 밀집지역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독립을 주장하면 역시 쿠르드족이 전체 인구의 10%에 이르는 터키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시리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개입으로 중동에서 가장 위험한 분쟁지로 떠오를 것이다. 따라서 한국군의 추가 희생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서 교수=추가 파병시 테러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미국과의 차별성을 대대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우리는 이라크 재건 사업만을 위해 파병한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이 교수=사실 대다수 아랍인들은 김선일씨의 경우와 같은 ‘참수’는 있을 수 없다고 공통적으로 말한다. 이라크 내부에서도 참수는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이라크인들이 죽었기에 한국인 한 명을 살해했다는 것에 대해 크게 연연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이라크인들의 심정에 주목해야 한다.

▽서 교수=우리한테는 엄청난 일이지만 그쪽 사람들이 볼 때는 그저 혼란기에 매일 벌어지는 일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이미 수많은 민간인이 숨졌기 때문이다.

▽이 교수=지금 이라크 내에선 종교 지도자들이 과거의 이라크 정부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정부의 외교 라인이 이들과 제대로 된 접촉 창구를 갖지 못한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서 교수=김씨를 살해한 무장단체는 공식 채널로 대화가 불가능한 비공식적인 사조직이었다. 또 전체 무장단체 내에서 방계(傍系)에 속하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협상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따라서 민간단체 기업 정부기관이 정보를 공유하면서 돕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으면 이번 사건을 푸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참고로 얘기하면 이슬람교는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모두 묶여 있는 집적체이다. 이번에 우리가 저지른 실수처럼 비(非)이슬람권에서는 이슬람교를 종교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 교수=각국의 이슬람교는 모두 하나로 연결돼 있다. 한국의 이슬람 조직을 통해서도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일본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일본인들을 납치했던 무장단체는 이라크 종교지도자들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 일본인들이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은 종교 지도자들이 영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서 교수=그렇다고 해서 한 국가의 공식 입장이 무장단체의 행동으로 흔들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국가의 체면 문제다. 대한민국이 무장단체에 굴복할 수는 없다.

▽이 교수=파병 강행과 재검토에는 각각 장단점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1년 가까이 파병 여부를 논의만 하다가 안전한 파병을 위한 사전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겼다. 문제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은 정말 문제가 있다. 더구나 향후 이라크의 전망도 예측이 힘들다. 이라크 내부의 문제도 문제지만 워낙 산유량이 많아 주변국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중동을 포기할 수는 없다. 세계화를 추구하면서 14억 인구의 이슬람권을 배제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싫다고 버릴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들을 우리의 우군과 시장으로 만들 것인가를 두고 고민해야 한다.

▽서 교수=미국의 국내정치 변화도 중요한 변수다. 올가을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미국은 이라크에서 발을 빼지 않고 계속 이라크 내에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할 것이다. 우리는 이를 염두에 두고 국익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70년대 건설을 통해 중동 지역에 좋은 이미지를 심어줬다. 이를 다시 살려야 한다. 정부는 기업들이 활발하게 중동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하고 지역 전문가를 육성해야 한다.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과감한 투자만이 중동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정리=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이원삼 교수 약력▼

△명지대 아랍어과 졸업

△카타르대 이슬람학 전공(학사), 모로코 모하메드5세대 석박사

△한국중동학회 이사

△한국이슬람문화연구소 소장(현)

△한국종교학회 이슬람분과 위원장(현)

△선문대 통일신학부 교수(현)

▼서재만 교수 약력▼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터키 국립앙카라대 정치학 박사

△한국중동학회 회장

△한국외국어대 중동연구소장

△중동아프리카 연구원장(현)

△한국외국어대 터키어과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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