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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5월 26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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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복귀 이후 첫 작품으로 내놓은 내각 개편안이 고건(高建) 전 국무총리의 제청권 행사 거부로 어그러졌기 때문이다. 집권 2기를 산뜻하게 출발하고 싶었던 기대와는 달리, 언론으로부터도 ‘헌법정신 위배’라는 지적을 받았다.
26일 오후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만난 이병완(李炳浣)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과도기에 정무수석비서관의 업무를 겸임하고 있었던 내가 꼼꼼히 챙기지 못했던 점을 자성한다”고 토로했다. 이 수석비서관이 ‘내 탓이오’라고 손을 들었지만, 이번 파동을 어느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번 개각 무산 사태는 청와대의 정무시스템 붕괴에 따른 ‘예고된 사고’였기 때문이다. 고 전 총리가 여당의 당선자를 비롯해 각계의 의견을 들으며 ‘결의’를 다지고 있을 때도 청와대 내에서는 “거듭 요청하면 들어주겠지”라고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참모들은 “대통령 뜻이 강하다”며 손을 놓았다. 그런 가운데 김우식(金雨植) 대통령비서실장만 고 전 총리를 세 차례나 만났다.
이런 정황 때문에 이번 파동이 근본적으로 노 대통령 혼자서 모든 걸 기획하고 집행하는 ‘1인극’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여권 일각에서 정무기능 부재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지만 노 대통령에게 이를 전달할 창구도 없었다. 청와대의 정무기능이 축소되면서 시스템이 작동되기는커녕 대통령의 의지가 상황을 좌지우지하는 경향까지 나타났다.
노 대통령은 복귀 직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상생(相生)의 정치를 거론하며 “상생의 정치는 자기주장만 고집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자면 상대편과의 간극을 좁히고 의견 차이를 수렴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정치 과잉’을 피하기 위해 정무기능을 축소한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 부재 상황이 자칫 ‘정치(政治)는 없고 통치(統治)만 있던’ 과거로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에 청와대는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김정훈 정치부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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