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고총리가 장관제청권 행사?

  • 입력 2004년 5월 20일 16시 36분


청와대가 내주 중 5∼7개 부처의 장관을 교체하는 조기개각 방침을 정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이 경우 사임을 앞둔 국무총리가 각료제청권 행사를 하게 될 수밖에 없어 ‘변칙제청’ 논란이 일고 있다.

청와대의 조기개각 움직임은 차기 총리로 내정된 김혁규 전 경남지사의 국회 인준이 한나라당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원칙대로 새 총리에게 각료제청권을 행사하게 한다면 개각은 다음 달 후반쯤에나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과 국제유가 급등으로 인한 경제불안 등 현안이 산적해 있어 조기개각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따라서 청와대는 일단 사퇴의사를 밝힌 고건 총리에게 각료제청권을 행사하게 해 개각을 단행 한 후 새 총리를 맞이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는 것.

그런데 이 같은 청와대의 움직임은 ‘변칙’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내각구성은 ‘대통령에 의해 총리가 먼저 지명되고, 국회 인준절차를 거친 총리가 국무위원을 제청토록 하는 게 헌법의 취지’인데 청와대가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곧 물러날 총리에게 제청을 맡기는 변칙을 하려한다는 것.

전문가들은 물러날 총리가 제청을 한다고 해서 헌법을 위반하는 것은 아니지만 헌법정신이 훼손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게다가 ‘변칙제청’은 참여정부가 강조해온 ‘책임총리론’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내치를 책임질 총리가 함께 손발을 맞춰 나가야 할 장관들을 스스로 선택하는 게 옳다는 지적.

청와대는 ‘변칙제청’ 가능성에 대해 언급을 피하고 있다.

윤태영 대변인은 20일 오후 브리핑에서 ‘고건 총리의 제청을 통해 부분개각이 이뤄질 것인가’라는 질문에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변인이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을 아꼈다.

한편 고건 총리도 ‘변칙제청’에는 부정적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시절 마지막 총리였던 고 총리는 ‘변칙제청’을 해준 경험이 있다.

김대중 정부들어 김종필 총리내정자가 국회의 임명동의 절차를 받지 못해 위헌시비에 빠질 우려가 있자 김대중 전대통령은 물러날 고 총리에게 장관제청권을 행사해주도록 부탁했고, 고 총리는 “국정공백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DJ의 부탁을 수용했던 것.

하지만 지금은 그 때와 상황이 다르다는 시각도 있다.

또 고 총리는 참여정부 1대 총리로서 제청권의 실질적 행사를 위해 노력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7월 허상만 농림부 장관 임명때 청와대에서 지명했던 인사를 거부하고 허장관을 제청하기도 했다.

이때문에 일각에서는 고 총리가 노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불가피하게 제청권을 행사하더라도 이름만 빌려주는 식이 아니라 실질적 제청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절충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박해식 동아닷컴기자 pisto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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