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再방북]野 “연금 미가입 파문 물타기 아니냐”

  • 입력 2004년 5월 16일 18시 56분


국가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최고지도자의 결단인가, 외교카드로 눈앞의 국내 정치위기를 모면하려는 술책인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22일 북한 재방문을 앞두고 일본 내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방북 발표 후 환영일색이던 여론은 몇 시간 뒤 고이즈미 총리의 국민연금 미가입 사실이 드러나자 ‘물타기 아니냐’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전격 결정과 연금 물타기 의혹=“결정한 것은 오늘 아침이다. 내가 직접 가서 국면을 타개하려 한다.”

고이즈미 총리는 14일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간자키 다케노리(神崎武法) 대표에게 방북 계획을 통보하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이에 앞서 오전 10시경 외무성 간부가 북한으로부터 ‘22일 평양 개최’ 제안이 왔다고 보고하자 그는 “좋아. 그럼 내가 가지”라며 즉석에서 결정했다.

당초 외무성이 상정한 수순은 다음주 실무진이 북한에 가서 핵 및 납치문제에 대해 협의한 뒤 의견 접근이 이뤄지면 다음달 초에나 총리의 방북을 검토한다는 것. 국교정상화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총리가 연거푸 상대국을 방문하는 것은 외교 관례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방북 발표로 떠들썩한 와중에 고이즈미 총리의 비서는 6년11개월간 총리가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적이 있다고 실토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간 나오토(菅直人) 대표와 정부 2인자인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이 물러나는 등 최근 터져 나온 일본 정치인의 연금스캔들은 정치생명을 위협할 정도.

야당은 “한 주간지가 추적 취재 끝에 총리의 연금 미가입을 확인한 직후 방북 발표가 나왔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더욱이 이날은 고이즈미 총리의 정계 라이벌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민주당 대표대행의 대표 취임이 확정된 날. 민주당은 “총리가 국민에게 거짓말을 해 왔음이 드러난 만큼 물러나야 한다”고 공세를 폈다.

▽집권당과 미국도 시큰둥=자민당은 간부회의에서 “납치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되기를 기대한다”며 총리의 방북을 승인했다. 하지만 당 내에서는 “연금문제로 곤궁한 처지가 드러나 북한에 약점 잡힌 꼴이 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일부 강경론자들은 “피랍자 가족이 돌아온 뒤 경제지원을 하면 뒷거래로 비칠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과 중국 정부가 방북을 환영한 것과 달리 미국은 대북 공조에 균열이 생길 것을 우려한 듯 떨떠름한 반응이다. 하워드 베커 주일 미대사는 “납치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을 이해한다”며 마지못해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본 언론은 북-일간 현안의 성격상 정상회담으로 양측이 모두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이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매우 부담스러운 방문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도쿄신문은 “피랍자 가족 8명의 송환이 성사돼도 북한이 사망했다고 발표했거나 행방불명된 다른 피랍자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일본 여론을 충족시키기 힘들 것”이라고 보도했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