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기각]박정규 “지난 두달 國喪처럼 지냈어요”

  • 입력 2004년 5월 14일 17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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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63일간의 탄핵심판 기간 중 어느 참모보다 더 애를 태워왔다. 젊은 시절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암자에서 사법시험 공부를 한 인연이 있는 그는 노 대통령과 호형호제해 온 사이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박정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63일간의 탄핵심판 기간 중 어느 참모보다 더 애를 태워왔다. 젊은 시절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암자에서 사법시험 공부를 한 인연이 있는 그는 노 대통령과 호형호제해 온 사이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노무현 대통령의 권한정지 63일간 가슴앓이가 가장 심했던 참모는 박정규(朴正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사건을 맡은 주무 수석비서관인 데다 노 대통령과는 경남 김해의 장유암이라는 암자에서 사법시험 공부를 함께 했던 인연으로 호형호제(呼兄呼弟)해 온 사이인 까닭이다.

민정수석비서관에 부임한 지 꼭 한 달째인 3월 12일 탄핵소추라는 날벼락을 맞은 박 수석은 “대통령을 잘못 보좌해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보따리 싸들고 낙향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괴로워했다. 평소 술자리라면 마다하지 않는 애주가이지만 “국상(國喪) 중에 행동거지를 함부로 할 수 없다”며 스스로 금주령을 내리기도 했다.

탄핵심판 기간 중 박 수석은 매일 오후 10시까지 사무실을 지키며 헌재의 움직임을 파악해 왔다. 그러나 압력을 행사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어 헌재측과의 접촉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으므로 더욱 속을 끓였다.

특히 주심인 주선회(周善會) 헌재 재판관과는 검찰 선후배로 각별한 사이지만 전화통화도 못했다고 한다. 박 수석은 “민정수석에 임명됐을 때 주 재판관이 전화를 걸어 ‘열심히 잘하그래이’라고 따뜻하게 격려해 주셨는데 답례 인사도 못했다”고 밝혔다.

지난주 한때 헌재가 탄핵소추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을 때 박 수석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고 한다. 진원지를 추적해 본 결과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잠시 정신이 멍했다고 회고했다.

선고 전날인 13일 저녁 박 수석은 박봉흠(朴奉欽) 정책실장과 함께 김혁규(金爀珪) 전 경남지사 등 열린우리당 영남지역 당선자 10명과 만나 오랜만에 술을 마셨다. 귀가 중이던 박 수석은 전화통화에서 “이번 일을 겪으면서 벼슬을 맡는다는 게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더욱 든다. 내가 봉사를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뼈있는 말을 했다.

한편 노 대통령은 14일 오전 청와대 관저에서 TV를 통해 헌재 선고를 지켜본 뒤 밝은 표정으로 63일 만에 본관 집무실로 출근했다.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면서 축하인사를 받았고 저녁에는 고건(高建) 국무총리와 만나 공백 기간 중의 국정 현황을 인수인계했다. 대통령비서실 직원들은 결과를 이미 예상됐던 탓인지 차분한 분위기였다.

4월 5일 청와대 식목행사와 4월 15일 총선 투표장에 모습을 잠깐 나타냈을 뿐 첫 손녀 서은양의 재롱을 위로삼아 칩거생활을 견뎌온 권양숙(權良淑) 여사도 이날로 ‘퍼스트 레이디’ 자리로 돌아왔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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