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4년 4월 30일 18시 22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이날 아버지의 유골을 안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딸 영숙씨(48)는 “고향인 경북 청도에 뼈를 묻어 달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2002년 함경북도 온성군에 매장돼 있던 아버지의 유골을 갖고 탈북한 뒤 중국에서 체류해 왔다.
백씨는 51년 국군 5사단 소속 일병으로 근무하다 북한 인민군에 포로로 붙잡혔으며 국방부는 51년 4월 28일 그를 전사자로 처리했다. 현재 백씨의 위패는 대전국립묘지에 ‘군번 1504895번 일병 백종규’라는 이름으로 안치돼 있다.
정부는 일단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서 유골에 대한 유전자 조사 등을 통해 백씨의 유골임을 확인한 뒤 국립묘지나 고인의 고향에 안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편 백씨의 유골 송환 움직임은 올 2월 초 시민단체인 납북자가족모임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
딸 영숙씨는 올 초 백씨의 유골을 촬영한 20분짜리 비디오테이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앞으로 보내는 호소문, 아버지 백씨의 증명사진 등을 납북자가족모임에 보내왔다.
백씨의 자녀 5남매 중 맏딸인 영숙씨는 아버지가 탄광 노동에 시달리다 97년 영양실조로 숨질 때 “고향인 경북 청도에 뼈를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자 이를 지키기 위해 세 차례나 탈북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1년 남편 아들 딸과 함께 탈북했으나 마음이 바뀐 남편이 북한으로 돌아가자며 중국 공안(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북송됐다. 그는 2002년 4월 남편을 제외한 아들 딸과 함께 온성군 상하리에 매장돼 있던 아버지의 유골을 갖고 다시 탈북했다. 그는 아버지의 유골을 중국 모처에 묻어 둔 뒤 다시 공안에 체포돼 북송됐다. 영숙씨는 지난해 4월 세 번째로 탈북했으나 그 과정에서 딸을 잃어버렸다.
영숙씨는 “아버지의 고향이 경북 청도군 금천면 소천리고, 남한에 15∼17세 아래 동생이 있다는 것, 그리고 군 입대 전 정미소에서 일을 했으며 할아버지가 사업차 일본을 자주 왕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인천에 살고 있는 백씨의 동생 청장씨(61)는 정부 당국에 “맏형님이 고향 청도군에서 정미소 일을 하다 6·25전쟁 때 군에 입대한 뒤 행방불명됐다는 이야기를 부친으로부터 들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