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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4월 11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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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리나라에서 갈라선 부부는 1000명당 3.5쌍. 10년 전에 비해서는 3배가 늘었고 러시아나 미국에는 못 미치지만 일본(2.3쌍)을 훨씬 앞서는 높은 이혼율이다.
이혼은 당사자에게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이지만 우리나라처럼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곳에서는 가족 해체로 이어져 사회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얼마 전 정부가 ‘이혼 전 상담제’라는 대책을 내놓았다. 앞으로 시군구에 건강가정지원센터를 설립하고 이혼하려는 부부는 반드시 이곳에서 상담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정부가 이혼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규정하고 예방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그 방식이 이혼 전에 상담을 실시하고 법원에 가져갈 ‘이혼필증’을 교부하는 방식이라면 정말 곤란하다.
우리 사회에서 이혼이 급증하는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와 배경이 있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이혼사유는 여전히 ‘성격 차이’가 1위였지만 ‘경제문제’가 고부갈등 등 ‘가족간 불화’를 제치고 2위로 부상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가장이 돈을 벌어오지 못하고, 아내가 직업전선에 대신 뛰어들면서 생기는 불화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호주제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의 가족제도가 급변하는 개인의 가치관을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배경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이미 감정적으로 갈 데까지 간 부부를 한 번 더 상담소로 불러 이혼 만류를 종용한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따지고 보면 이혼할 수 있는 권리는 인간의 기본권 가운데 하나다.
이혼을 금지한 가톨릭 교리의 틀을 깬, 세계 최초의 이혼법이 프랑스혁명 직후인 1792년 프랑스에서 제정됐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결혼제도가 인간의 본성과 배치된다’고 주장한 계몽주의 사상가들 덕분이다. 최근 유전학의 발전은 좀 더 나은 배우자를 찾는 것은 모든 동물의 본능임을 밝혀내고 있기도 하다.
몽테스키외는 “이혼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그 사실보다 부부가 서로에 대해 애정을 갖게끔 기여하는 것은 없다. 남편과 아내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어려운 점들을, 여차하면 결혼을 끝장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인내심을 갖고 참아내는 쪽으로 이끈다”고 설파했다. 이혼제도가 오히려 파경을 막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꿰뚫어본 것이다.
어느 사회나 격변기에는 이혼율이 높다. 혁명의 시기나 전쟁 직후에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높은 이혼율을 보였다. 우리나라도 외환위기 때 사상 최고의 이혼율을 기록했다.
사회변화의 진통을 개인 차원에서 감당하지 못할 때 이혼이 늘어난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가족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진단 없이 절차를 까다롭게 해서 이혼율을 낮추겠다는 것은 탁상행정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하루에 458쌍이 헤어졌다. ‘불행한 결혼’을 하루빨리 끝장내고 싶어 정부가 설치한 상담소에 급행료를 지불하는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정성희 사회2부 차장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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