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D-8]각당대표 票心잡기 ‘살인적 스케줄’

  • 입력 2004년 4월 6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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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경북 구미시 선산읍 성심양로원을 방문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할머니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김동주기자
6일 경북 구미시 선산읍 성심양로원을 방문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할머니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김동주기자
‘살인적인 스케줄.’

여야 주요 정당 대표들은 6일 영남 호남 충청 등 전국 각지를 누비며 소속당 후보들에 대한 지원전을 벌이느라 발이 부르트고 코피가 터진다. 기선잡기를 위해 대표의 지원유세를 기다리는 후보들을 생각하면 단 1분도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이날 하루 동안 경북 선산→안동→영주→문경을 방문한 뒤 충북 보은을 거쳐 대전→충남 홍성→천안 등 8개 지역을 찾았다.

그 전날엔 서울을 출발해 강원 속초→강릉→동해→삼척과 경북 영덕→울진→포항 등 동해안 일대 7곳을 방문했다. 이날 오전 9시반 서울 강서구 구암공원에서 식목일 기념식수로 시작한 일정은 밤 12시를 넘겨 대구 달성의 자택에 도착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박 대표는 이틀 동안 여섯 끼를 모두 이동하는 7인승 승합차에서 과일 김밥 빵 등으로 때웠다. 20∼30분 간격으로 빡빡하게 짜여진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식당에 가는 것은 아예 포기했다.

수면 시간은 하루에 채 4시간도 안 된다. 이동 중 ‘토막 잠’도 못 잔다. 중앙당과 연락을 취해 시시각각 변하는 선거 분위기를 읽고 선거대책위원회 관계자들과 휴대전화를 통해 선거 전략을 짜야 하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정동영(鄭東泳) 의장의 회담 제의에 대한 대응 방안도 이동 중 ‘전화 회의’를 통해 결정됐다.

지난주 말부터는 오른손을 제대로 못쓴다. 너무 많은 유권자들과 악수를 하는 바람에 손이 심하게 부어올랐다. 통증도 심하다. 그래서 5일부터는 주로 왼손으로 유권자들의 손을 붙잡는다.

민주당 추미애 선대위원장이 6일 휠체어를 탄 채 전북 전주시 풍남동 남문시장에서 첫 유세에 들어갔다. -원대연기자

▽민주당=광주에서 3일부터 5일까지 ‘3보1배’ 행진을 한 뒤 탈진했던 추미애(秋美愛) 선거대책위원장은 6일부터 링거 주사를 맞으며 휠체어를 탄 채 전북지역 지원유세에 나섰다.

이날 오전 의료진은 “허리와 무릎 염증이 심각하고 팔과 어깨 경련이 멈추지 않아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고 충고했지만, 추 위원장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한 핵심 당직자는 “50년 역사와 전통을 가진 정통 야당의 생사가 ‘키 162cm, 몸무게 55kg’인 한 여성의 작은 몸에 달려 있음을 추 위원장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오전 11시50분∼12시반 민주당 광주시당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추 위원장은 3보1배를 끝낸 소감을 얘기하다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그는 “처음엔 ‘추미애 너마저 쇼하느냐. 진작 잘하지’ 하는 자존심 짓밟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러나 한 택시운전사가 내 손이 까질까 봐 자신의 장갑을 벗어 주는 것을 보고 ‘왜 나를 도와 주는 사람은 없을까’라고 생각했던 내가 오만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추 위원장은 간담회 직후 전남대병원에서 링거 주사를 맞고 전북 정읍으로 가는 유세 버스 안에서 5500원짜리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웠다. 추 위원장은 이날 기력이 떨어질 때마다 초콜릿으로 요기를 했고, 오후 9시경 전주 유세를 마친 뒤 전주병원에 입원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6일 부산 경남(PK) 표심잡기 일환으로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을 방문했다. -이훈구기자

▽열린우리당=정동영 의장은 6일 오후 경남 진주의 한 음식점에서 회견문을 읽다가 헛기침으로 수차례 회견문 낭독을 중단했다. 평소 연설에서 헛기침은커녕, 오독(誤讀)도 거의 없던 그다. 성량(聲量)도 평소의 절반 정도였다. 3일부터 이날 밤까지 나흘 동안 귀가를 접고 강행한 영남권 공략 탓이다.

평소 “잠이 최고 보약”이라던 정 의장은 전날 울산 유세를 마치고 밤 12시가 다 되어서 이날 일정의 출발지인 경남 거제에 도착했다. 오전 6시경 기상해 숙소에서 반신욕을 했다지만 5시간의 수면은 부족해 보였다.

기상 직후 거제시 삼성조선 앞 출근길 인사를 시작으로 MBC 라디오프로그램과의 전화 인터뷰, 재래시장 방문까지 조찬 전 3개의 일정을 소화했다. 이 지역 한나라당 후보이자 국회 탄핵소추위원인 김기춘(金淇春) 의원을 겨냥한 행보였다.

그는 이어 버스를 타고 진주 중앙시장에 도착했다. 이 지역 한나라당 후보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시간이 없었지만 “한나라당 후보에게도 박수를 보내 달라”고 덕담했다.

20여분간의 점심 식사와 기자회견을 마친 뒤 마산, 창원을 거쳐 진해를 방문했다. 벚꽃 구경하는 유권자들에게 그는 줄어든 성량 탓인지 유세용 마이크를 평소보다 더 가까이 입에 댔다. 해가 저물어 김해공항으로 간 것은 오후 8시였고 10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다.

▽자민련과 민주노동당=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는 이날 두 차례의 방송 녹화를 빼고는 하루 일정을 서울의 재래시장과 백화점을 돌면서 바닥 민심을 챙기는 데 쏟았다.

이날 오전 서울 반포동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서 시작한 상가 순례는 사당동 사당시장→상도동 성대시장→상봉동 우림시장→상계동 롯데백화점→방학동 도깨비시장→수유동 수유시장→미아동 숭인시장을 방문해서 오후 8시30분에 종료됐다.

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 대표는 이날도 자신의 지역구인 경남 창원을 선거를 위해 오전 5시부터 오후 11시반까지 지역구를 돌면서 공단 노동자와 영세 상인들을 직접 만나는 일과로 하루를 채웠다. 이동 수단은 2년 전 지지자가 마련해 준 1800cc짜리 카스타.

당 대표 토론회가 열리면 ‘머나먼’ 서울로 번개같이 다녀와야 하는 것도 고역이다. 최근에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바람이 영남권에 불어 닥치면서 권 대표는 더욱 바빠졌다. 울산-부산-거제-창원-마산-진주로 이어지는 ‘영남 진보벨트’를 지키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원정 유세를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광주·전주=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거제·진주=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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