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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3월 17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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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표적 논객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60)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가 고려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로 위촉돼 1년간 강단에 선다.
그는 취재차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한일 및 미일관계와 일본의 안전보장, 북한 핵문제 등 국제정세 전반에 대해 강의할 예정이다.
후나바시씨는 “지난해 도쿄대 객원교수를 맡은 적은 있지만 외국 대학의 강단에 서기는 처음”이라며 “한국 젊은이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면서 서로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에도 게재 중인 그의 칼럼은 국제정세의 흐름을 꿰뚫는 안목과 균형 잡힌 시각, 핵심 뉴스원들의 속내가 드러나는 코멘트로 정평이 나있다. 미국 워싱턴 정가와 뉴욕 월가는 물론 미 국무성, 국방성의 아시아정책 담당자들 사이에서도 ‘동북아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물’로 통한다.
최근 그의 칼럼은 미일동맹의 본질과 이라크사태, 북핵 문제 등을 주로 다뤘다. 그는 “화제가 되고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내용을 칼럼 소재로 정한다”면서 “자위대의 이라크 파견이나 6자회담이 뉴스의 초점이 되다 보니 칼럼에도 자주 등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칼럼니스트가 피해야 할 함정으로 ‘주장을 위한 주장’을, 갖춰야 할 덕목으로는 ‘발품을 파는 취재’를 꼽았다. 칼럼니스트는 현장에서 취재한 내용을 근거로 현상과 사물에 대한 시각을 제시하는 데 그쳐야 하며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
“처음부터 글의 방향을 정하고 쓰다 보면 주장이 공허해져서 독자의 공감을 얻지 못합니다. ‘백지 상태’에서 출발해 새 사실들을 발견해 가는 과정을 거쳐야 필자 본인의 의견도 정교해지고 설득력도 높아지지요.”
취재를 하지 않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만으로 글을 쓰면 칼럼니스트가 아니라 ‘에세이스트’로 불려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매주 한 차례 아사히신문에 게재되는 ‘일본@세계’ 칼럼을 위해 전 세계를 무대로 취재활동을 벌인다. 가장 큰 무기는 주요국 정부와 싱크탱크에 포진해 있는 인맥. 1년 중 3분의 1은 해외에서 보낸다.
취재 일정을 묻자 수첩을 뒤지면서 ‘18일 미국에 가서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 등 면담. 그 후 아일랜드의 국제회의 참석. 귀국 길에 인도에 들러 경제발전 상황 취재…’ 등의 스케줄을 소개했다.
후나바시씨는 “한일관계가 역사문제라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짧은 기간에 이 정도까지 발전한 것은 기적”이라며 “영토문제처럼 민감한 현안이 남아 있지만 젊은 세대의 교류를 통해 능히 극복할 것으로 믿는다”고 낙관했다.일본 사회의 우경화에 대해서는 “내셔널리즘 자체를 탓할 수는 없지만 자기만이 옳다고 믿고, 일본 내부의 문제를 외부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어 걱정스럽다”고 털어놓았다.
앞으로의 포부를 묻자 뜻밖에도 “‘동해(일본식 호칭은 일본해) 문제’에서 한일관계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동해는 남북한과 일본 중국 러시아가 공유하는 바다입니다. 바다의 크기로 보나 연안국 면면으로 보나 세계에서 손꼽히는 중요한 바다지만 걸맞은 대접을 못 받고 있어요. 세계문명의 중심 바다로 키우기 위한 비전을 마련했으면 합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일본해’라는 명칭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처럼 일본도 열도의 서쪽에 있는 바다를 동해로 인정하기는 힘들다”며 “여건이 허락한다면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해 새 이름짓기 캠페인을 벌이고 싶다”고 말했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후나바시 요이치▼
△1944년생
△1968년 도쿄대 졸업, 아사히신문 입사
△1975∼76년 미국 하버드대 니만 펠로
△아사히신문 베이징특파원, 워싱턴특파원
△미국경제연구소(IIE) 객원연구원
△아사히신문 미국총국장
△1998년부터 ‘일본@세계’ 칼럼 게재
△저서:‘냉전 후’ ‘일본의 대외구상’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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