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日총리 겨냥 비판]불쑥 꺼낸 ‘3·1절 경고’…韓日 파장

  • 입력 2004년 3월 1일 18시 52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1일 3·1절 기념사 발언은 ‘작심하고 한’ 경고성 발언으로 보인다.

우선 발언 수위 자체가 1995년 11월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한 ‘버르장머리’ 발언 이후 가장 강도 높은 것이라 할 만하다. 지난해 6월 일본 방문 때 중의원 연설과 비교할 때도 노 대통령은 ‘유사법제’ 통과 문제에 대해 “여러분과 각계 지도자들께 ‘용기 있는 지도력’을 정중히 호소한다”는 완곡한 표현을 썼다. 지난해 3·1절과 8·15광복절 기념사에서는 일본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또 과거사 및 독도 문제와 관련한 최근 일본 정계지도자들의 잇따른 망언(妄言)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대응을 피해 왔다.

그런 노 대통령이 이날 참모진이 준비한 원고를 직접 고쳐가며 발언의 수위를 한껏 높인 것은 나름대로 정치 외교적 득실을 미리 계산한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외교적으로 보면 최근 독도우표 발행 문제를 둘러싸고 신경전이 벌어진 데 이어 지난달 2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총리가 제2차 세계대전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매년 참배할 뜻을 분명히 밝힘에 따라 ‘일본의 우익보수화 움직임을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 정부가 일본 문화를 개방하는 등 성의를 보여 온 데 반해 일본 쪽에서는 도리어 우경화(右傾化) 흐름이 강화되면서 상응한 조치가 없었다는 게 우리 정부의 불만이었다.

이와 함께 선거를 앞두고 있는 양국 내에서 작용과 반작용이 반복되는 ‘상승 작용’이 빚어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설득력 있게 나온다.

한 일본 전문가는 “노 대통령의 발언은 한 번은 지적할 것을 짚은 것”이라면서도 “일본 정계 지도자들이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망언을 잇달아 쏟아내고 있는 시점에 우리 역시 4월 총선을 앞두고 국내 여론을 의식한 정치적 발언이 잇따를 경우 양국관계에 큰 상처가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 직후 외교통상부가 처음 “고이즈미 총리를 겨냥한 발언은 아니라는 게 외교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밝혔던 것도 이런 상황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는 후문이다. 물론 외교부측은 나중에 이를 취소했지만 실제 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와 관련해 외교부나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공식적인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았다. 그런 탓에 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일본에 충고한다’는 식의 비(非)외교적인 표현을 쓰기도 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일본의 문제발언에 대한 역대 정부의 대응 사례
일본 정부의 문제 발언한국 정부 대응
“군국일본이 있었기에 아시아가 구원됐다. 일본의 한국병합은 동양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것이었다.” (에토 다카미 일본 관방장관, 1995년 10월)“이번에는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기어이 고치겠다.”(김영삼 대통령, 1995년 11월 14일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총리 자격으로 야스쿠니신사를 공식 참배하겠다.”(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2001년 4월 24일)“고이즈미 총리가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한 것은 과거 피해를 보았던 우리로선 이해하기 어렵다.”(김대중 대통령, 2001년 4월 말 일본 언론 합동 인터뷰에서)
“다케시마(독도)는 일본의 영토다. 한국도 잘 분별해서 대응하면 좋겠다.”(고이즈미 총리, 2004년 1월 9일)“한국은 미래지향적 관계를 희망하지만, 일본의 행동은 한국정부를 어렵게 하고 있다.”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 2004년 1월 14일 공개한 일본 외상과의 전화통화 내용)
“내가 왜 (야스쿠니신사 참배 금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당해야 하나. 매년 신사 참배하겠다.”(고이즈미 총리, 2004년 2월 27일)“침묵 속에 오히려 더 깊은 뜻이 담긴 것 아니냐.”(윤태영 청와대 대변인, 2004년 2월 29일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표명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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