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불체포-면책특권]<下>전문가 의견-외국 사례

  • 입력 2004년 2월 27일 18시 52분


코멘트
《국회의원에게 부여된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의 부작용이 계속 불거지자 이들 특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 두 가지 특권은 17세기 영국에서 왕권에 대한 의회의 권리보장을 위해 처음 법제화된 뒤 미국의 연방헌법에 의해 성문화되면서 각국 헌법에 수용된 것. 전문가들은 “헌법의 취지 자체는 옳으나 국회의원이 이를 남용하는 것이 문제”라는 데 대체로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법 개정 여부와 방식 등 구체적인 대안을 놓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헌법 개정보다는 국회법 개정으로=대한변협은 헌법 자체가 아닌 사법당국의 체포동의 절차와 석방요구 발의 절차 등을 규정하고 있는 국회법 26∼28조의 개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방탄국회’를 방지하기 위해 체포동의안이 7일 이내에 처리되지 않으면 가결된 것으로 간주하고,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의 체포동의안과 석방동의안 심사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마련한 것.

▼관련기사▼
- <上>누구를 위한 특권인가

변협 김갑배(金甲培) 법제이사는 “두 특권을 무조건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행정권에 의해 의정활동이 방해 또는 탄압받지 않도록 하자는 당초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특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성호(諸成鎬) 중앙대 법학과 교수도 “공익과 관련이 없는 사실 등에 대해서는 제한할 필요가 있으나 의정활동에 필요한 부분은 인정해야 한다”며 “헌법을 존중하되 이것이 악용될 소지를 막는 조항을 세부법률에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회법만을 개정하는 데 반대하는 의견도 일부 있다.

이재석(李在錫) 대구대 법학부 교수는 “헌법을 놔둔 채 국회법만 개정한다면 위헌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며 “헌법 45조를 좀 더 세분화하는 개헌도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내부 자성과 유권자 감시가 먼저=이 같은 법 개정과는 별개로 국회의원들 스스로 자성해야만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법을 개정하는 것도 어차피 국회의원들이므로 이들의 양심에 맡길 문제라는 것.

게다가 세계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의원의 특권에 함부로 손을 대는 것은 오히려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를 통해 국회의 자율적인 처벌을 유도하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참여연대 이태훈 정책실장은 “헌법 등 법을 개정하는 것보다는 문제 있는 의원들에 대한 유권자 감시와 소환 등의 방법으로 이를 제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재완(文在完) 단국대 법학부 교수는 “권력을 견제할 필요가 있어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권한이니 만큼 역사적 맥락을 보고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신우철(申瑀澈) 영남대 법학부 교수는 “검찰과 국회간의 권한쟁의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하는 방법도 강구할 필요가 있다”는 대안을 내놓기도 했다.

▽외국의 사례=국회의원의 두 특권을 헌법으로 보장하는 것은 세계 공통의 추세이지만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사안과 혐의에 따라 이를 제한하고 있다.

미국은 연방헌법에서 ‘내란죄, 중죄 및 치안위반죄’에 해당하는 경우 불체포특권을 제한하고 있다. 영국도 마찬가지. 두 나라 모두 형사상 불체포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셈. 다만 민사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거나 강제구인을 당하지 않을 특권은 인정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형사상 불체포특권도 인정하고는 있지만 의원들이 이를 남용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다. 변협에 따르면 일본 헌법이 시행된 1948년 이후 체포동의를 요청한 20건 가운데 의회가 부결시킨 사례는 2건에 그치고 있다.

법무법인 KCL에 따르면 면책특권의 경우도 미국은 입법행위 과정에서 일어난 발언에 대해서만 인정할 뿐 사적인 발언이나 비정치적 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하고 있다.

독일은 아예 ‘중상(中傷)적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면책특권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기본법에다 못을 박았다.

이탈리아에서는 1990년대 검찰이 ‘마니풀리테(깨끗한 손)’를 표방하며 대대적인 부패 사정 작업을 전개할 때 국민의 거센 비난여론에 직면한 상원이 부패 관련 의원의 면책특권 박탈을 의결한 사례가 유명하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