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지침 아닌가 부담"

  • 입력 2003년 12월 15일 00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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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4일 “지난해 대선 때 우리가 쓴 불법자금 규모가 한나라당 불법자금의 10분의 1을 넘으면 직을 걸고 정계를 은퇴할 용의가 있다”고 발언한 데 대해 검찰은 우려하는 분위기다.

대통령이 검찰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거나 ‘청와대와 검찰간의 교감’ 논란을 불러일으켜 특별검사제 도입의 불씨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검찰의 부담=검찰은 ‘10%’의 진위를 떠나 노 대통령의 언급이 수사 과정에서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이 수사가 현직 대통령의 진퇴 여부를 결정할 사건으로 비화됐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

또 검찰이 노무현 후보 캠프의 불법 대선자금 규모를 한나라당의 10% 미만으로 밝혀낼 경우 ‘대통령 보호를 위한 수사’를 했다거나 ‘대통령의 말=수사 가이드라인’이었다는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럴 경우 야당측이 공정한 수사를 위한 특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할 게 뻔해 ‘검찰은 일을 하고서도 욕을 먹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이와 함께 대통령의 언급으로 자금 제공자인 기업에 대한 수사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불법 대선자금 규모에 대해) 선을 그으면 정치 보복을 우려하는 기업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고 말했다.

▽노 후보 캠프 수사=수사팀 관계자들은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기업에서 받은 합법적 대선자금이나 불법 자금의 전체 규모를 아직은 알 수 없는 단계이며 수사가 진행될수록 규모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진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은 삼성 LG SK 현대차에서 받은 502억원. 그러나 검찰은 이들 기업이 민주당에 제공한 불법 대선자금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이들 기업이 지난 대선 때 노 후보와 국민통합21의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이후 민주당에 직접 또는 노 후보 캠프를 거쳐 낸 후원금 중 일정 부분을 불법 대선자금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SK가 대선 전 임직원 명의로 열린우리당 이상수(李相洙) 의원에게 제공한 10억원이 불법 대선자금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럴 경우 삼성이 노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씨를 통해 임직원 명의로 민주당에 낸 3억원도 불법 자금의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 또 안희정씨가 지난해 대선 전 받았다는 출처불명의 5억9000만원과 썬앤문그룹에서 받은 1억원도 불법 대선자금 범주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당 정대철(鄭大哲) 의원이 굿모닝시티에서 받은 2억원과 검찰이 압수수색을 벌인 서해종건이 제공한 돈도 불법 대선자금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다 민주당 제주지부 후원회를 통해 모금한 돈 중 회계처리 누락 의혹을 받고 있는 금액이 불법 자금으로 드러날 경우 노 후보 캠프의 불법 대선자금 규모는 훨씬 늘어날 수 있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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