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며느리 성적이 왜 필요한가

  • 입력 2003년 11월 3일 18시 16분


국회 감사원장 인사청문회 특별위원회가 전윤철 후보에 대한 청문회에 앞서 교육인적자원부에 무리한 자료제출을 요구해 논란을 빚었다. 후보뿐만 아니라 배우자 아들 며느리의 초중고교 생활기록부와 대학 성적증명서까지 요구한 것이다. 아들 며느리의 경우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아 없었던 일이 되긴 했지만 국회 특위의 수준이 고작 이 정도인지 쓴웃음을 짓게 한다.

감사원장 인사청문회는 원장으로서 자질과 능력을 갖추었는지, 도덕성에는 하자가 없는지, 감사원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인물인지 등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가족의 생활기록부가 이런 점을 파악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생활기록부에는 성적뿐만 아니라 성격 질병 등 공개하고 싶지 않은 개인정보 수십 가지가 담겨 있다. 따라서 교육당국은 학생지도 자료, 진학 자료 이외의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본인도 아닌 가족의 생활기록부가 국회에 제출되는 것은 분명한 사생활 침해다. 특위는 ‘본인 동의를 전제로 제출을 요청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그런 요청을 한 것만으로도 국회가 개인정보 인권에 무감각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감사원장 인사청문회 특위는 9월 윤성식 후보에 대한 청문회에서도 그의 중고교 생활기록부를 거론해 청문회의 본질을 벗어났다는 지적을 받은 일이 있다. 고위 공직자로서의 기본 조건을 따지기보다 인신공격 등 곁가지에 매달리는 인사청문회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한 지 1년이 지난 만큼 이제 질과 내용면에서도 한 단계 발전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다행히 어제 전 후보에 대한 청문회는 과잉 자료제출 논란에도 불구하고 병역면제 의혹, 재산문제, 감사원 개혁 등과 관련해 비교적 충실한 검증을 받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을 계기로 국회 인사청문회가 제자리를 잡기를 기대한다. 며느리 성적표를 요구하는 식의 코미디는 또다시 있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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