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재신임 정국]盧, 하루만에 ‘공세 전환’ 까닭은

  • 입력 2003년 10월 12일 19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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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11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국무위원과 대통령수석비서관 및 보좌관 전원이 이날 제출한 사표를 반려한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
노무현 대통령이 11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국무위원과 대통령수석비서관 및 보좌관 전원이 이날 제출한 사표를 반려한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재신임을 받겠다고 한 진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은 10일 재신임 발언 때는 ‘20년 집사’인 최도술(崔導術)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의 비리 의혹에 책임지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11일에는 한나라당의 ‘국정 발목잡기’를 강력하게 성토하고 나서 재신임에 나서는 의도와 목표가 달라진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도 불리할 때마다 재신임 카드를 꺼내 여론 뒤집기에 성공해 왔다. 이 때문에 야권은 “이번에도…”라며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측근 비리’에서 ‘국회 탓’으로 쟁점 이동=노 대통령은 10일 기자회견 때는 최 전 비서관의 비리 의혹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며 재신임 얘기를 꺼냈다. 새 정부가 국가정보원과 검찰 등 권력기관에 대한 통제권을 놓아버린 상황에서 ‘도덕적 신뢰’마저 깨어져서는 통치기반이 사실상 와해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 이 같은 발표가 나왔다고 핵심 참모들은 설명한다.

그러나 11일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은 국정혼란의 탓을 한나라당에 떠넘겼다.

국회가 김두관(金斗官) 행정자치부 장관의 해임결의와 윤성식(尹聖植)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부결한 것에 대해 ‘대통령이 심각하게 흔들리는 상황’이라는 격한 표현까지 쓰면서 거대 야당의 국정 비협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재신임으로 정국반전 기도=청와대 참모들은 그동안 집권 초기의 국정혼란상을 막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정국반전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진언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정권 초기부터 한나라당이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 대통령이 무제한적으로 공격을 받은 게 한두 번이었느냐”면서 “386 중심의 핵심 ‘이너서클’ 안에서는 대통령이 이전처럼 국정원과 검찰을 써서라도 기강을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력히 제기됐다”고 밝혔다. 한때 노 대통령은 이 문제를 놓고 심각한 고민을 했지만 “대통령이 검찰과 국정원을 부리면 측근들이 권력을 향유하게 되고 결국 퇴임 후에 측근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는 것 아니냐”며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청와대의 한 386 참모는 “지방분권 등 각종 개혁 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한나라당이 시비를 걸려 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으면서 소수파 대통령으로서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결국 노 대통령은 재신임이라는 정면 돌파 카드로 한나라당의 국정혼선 책임을 부각시키면서 정치판 구도를 바꿔 놓겠다는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해결 가능성 논란=한편 문희상(文喜相) 대통령비서실장은 11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비서실 국정감사에서 노 대통령의 재신임 방법에 대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한 어떤 방식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문 실장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 중간평가 때처럼 전 정치권이 모여서 해결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87년 대선에서 ‘중간평가’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으나 이후 제1 야당 총재와 물밑 협의를 통해 이를 무산시킨 바 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11일 후속기자회견 문답…"장관-참모들 주된 책임 없어"▼

노무현 대통령은 11일 고건(高建) 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전원과 문희상(文喜相) 비서실장 등 대통령수석비서관 및 보좌관이 사표를 제출한 직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정의 중심을 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며 사의를 즉각 반려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장관이나 청와대 참모를 부분적으로 문책하거나 교체할 생각은….

“오늘 상황에 그들에게 주된 책임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앞으로 재신임을 묻는 상황을 관리하는 데 어떻게 새 장관과 새 수석을 임명해 풀어나갈 수 있겠나.”

―재신임을 묻는 방법과 시기는….

“국민투표에 의한 방법이 가장 분명하다. 제도가 불명확하지만 논의 여하에 따라 국민투표법을 손질할 수 있지 않겠나. 그렇다고 대통령이 이것저것 정책 사안을 유리하게 끌고 가지는 않겠다. 제도가 없으면 제도를 열면 되고,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더 좋은 방법으로 하면 된다. 대통령 한 사람의 재신임 여부보다 한국의 정치가 제대로 가느냐 안 가느냐, 대통령 한 사람이 중간에 희생해도 한국 정치가 바로 갈 수 있으면 임기 5년 다 채운 것보다 더 큰 진전이라는 생각으로 결정했다. 유불리를 안 따지겠다. 다만 한국정치 발전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 그런 시기를 선택하겠다.”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안 가결과 감사원장 임명동의안 부결에 대해 일각에선 ‘코드 인사’에 대한 심판이라고 말하는데….

“국회는 대통령 길들이는 곳이 아니다. 대통령의 코드 인사가 뭘 말하는지 잘 모른다. 검찰 인사가 코드 인사였나, 국방부 인사가 코드 인사였나. 자신들 마음에 안 드는 인사라는 이유로 코드 인사라고 몰아붙인 것 아니냐. 일부 신문 마음에 안 들면, 야당 마음에 안 들면 코드 인사인가. 정치를 그런 식으로 비판하면 안 된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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