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태수석 발언파문 ‘파병 긍정론’ 급제동… 盧心 실렸나

  • 입력 2003년 9월 17일 06시 34분


코멘트
이라크 전투병 파병을 둘러싸고 청와대 내에 강온 양기류가 마찰을 빚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유인태(柳寅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16일 전투병 파병 요청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나섰다. 그동안 청와대 안에서는 이라크 파병에 긍정적인 외교안보팀의 목소리만 주로 들렸다. 그러나 유 수석 등이 제동을 걸고 나선 데다 이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도 ‘신중론’ 쪽에 무게를 둔 발언을 했다. 이 때문에 정부 내에서 예민한 사안인 파병문제의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는 얘기마저 새나오고 있다.

▽유인태 수석 발언 진의=유 수석이 “비전투병 파병이라면 모르지만 전투병까지 파병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언급은 사실상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의 파병 요청은 어디까지나 미국의 희망사항이지 주권국가인 우리가 미국의 눈치를 살피면서 결정을 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논리다.

유 수석의 발언은 그동안 청와대 안에서 잠복해 있던 전투병 파병 반대 입장에 불을 댕겼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실제 청와대 안에는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노 대통령의 386 핵심참모들을 중심으로 이라크 전투병 파병에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유 수석의 이날 언급은 ‘미국의 페이스에 일방적으로 말려서는 곤란하다’는 청와대의 숨은 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하는 시각이 많다.

▽노심은 ‘관망’?=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부 언론에서 마치 파병을 하는 것처럼 보도되고 있는데 그런 보도가 안 나갔으면 좋겠다”며 파병 문제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이례적으로 강조했다.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군통수권자인 노 대통령이 파병을 기정사실화하는 보도에 대해 제동을 건 것이다.

청와대소식지인 ‘청와대브리핑’도 16일자에서 “일부에선 정부가 이미 추가파병을 결정하고 단지 여론의 추이를 살피는 것처럼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고 정부는 아직 어떤 결정도 내린 바 없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이라크 파병문제를 서둘러 결정할 필요는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내부에서도 양론이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면서 미국의 일방적인 ‘페이스’와 자연스레 거리를 두겠다는 생각이라는 것.

▽느긋한 외교안보 라인=실제로 이라크 전투병 파병문제에 대한 정부 내의 분위기는 3월 파병 논의 때와는 달리 느긋한 편이다.

이라크전이 발발한 상황에서 결정을 서둘러야 했던 지난번 파병 때와 달리 이번에는 시한이 급박하지 않고, 미국 쪽 사정이 더 다급한 만큼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게 정부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16일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실무조정회의에서 국방부측은 군 병력 중 특전사의 1, 2개 여단 정도가 파병 가능한 병력이며, 최소한 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파병비용도 국방비가 아닌 예비비에서 지출돼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NSC가 18일 상임위 회의를 열더라도 성급하게 결론을 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도 여론의 추이와 유엔의 움직임을 지켜보겠다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비교적 파병에 긍정적인 외교안보라인에서는 다음달 중순경 정부의 입장을 정리한 뒤 한미정상회담을 거쳐 올 연말쯤 파병이 이뤄지는 정도로 일정을 잡고 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