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당선 직후인 지난해 12월 26일 경기 양평군 한화리조트에서 열린 민주당 중앙선대위 당직자 연수회에서 한 이른바 ‘패가망신’ 발언이다.
노 대통령은 당시 이 발언에 이어 “나를 보좌해 온 사람들을 계속 쓰겠지만, 그 사람들이 일 저지르지 않도록, 오류를 충분히 검증하고 책임이 모두 내게 돌아온다는 자세로 써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주변의 부정비리 소지를 발본색원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던 노 대통령의 ‘최측근’ 양길승(梁吉承) 전 대통령제1부속실장이 향응과 청탁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노 대통령의 ‘친정’인 민주당은 허탈감에 빠졌다.
당시 현장에서 노 대통령의 ‘패가망신’ 발언을 들었던 한 당직자는 7일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푸념했다.
“대통령의 ‘패가망신’ 발언 이후 당 쪽에서는 고생했던 당료들의 공기업 취직 부탁 하나를 하면서도 혹시 청와대에 누가 될까 몸조심을 했다. 그런데 패가망신 경고를 하기는커녕 술 접대를 한 이모씨의 청탁을 아무 말 없이 그냥 듣고만 있었던 양 전 실장을 청와대가 감싸는 듯이 얘기하는 것을 들으며 ‘민심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사태를 보는 민주당 내부의 비판론에는 노 대통령이 청와대 측근들과 대선에 공헌한 민주당 중진들의 문제에 ‘이중 잣대’를 적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작용하고 있다.
특히 굿모닝시티 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정대철(鄭大哲) 대표 문제에 대해 ‘엄정한 수사’를 당부했던 노 대통령이 양 전 실장의 사표를 수리하면서 “성실한 사람인데 안타깝다”는 말을 했다는 얘기가 전해지자 주류, 비주류 가릴 것 없이 발끈하는 분위기였다.
주류측의 한 당직자는 “노 대통령이 7월 21일 정치자금 관련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경선자금은 깨끗하다며 굿모닝시티의 돈을 받은 정 대표에 대한 수사는 엄정하게 하라고 할 때부터 알아봤다. 결국 양 전 실장에 대한 조사도 ‘팔이 안으로 굽는 식’으로 하다가 망신만 당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비주류 쪽의 한 당직자도 “혹시라도 청와대의 이중 잣대가 ‘그래도 나와 내 주변은 다른 곳에 비해 깨끗하다’는 의식에서 나온 것이라면 심각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그런 상황이 왔다면 이미 대통령의 눈과 귀는 가려져 있다는 증거라는 설명이었다.
이승헌 정치부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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