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지도자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생각은 그가 사용하는 호칭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21일 합동기자회견을 하며 베를루스코니 총리를 ‘친구’ 또는 ‘좋은 친구’라고 불렀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부시 대통령이 이날 기자회견 도중 북한 관련 질문에 답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거론할 때 사용한 표현도 분석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부시 대통령은 ‘미스터(Mr.) 김정일’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물론 아무 타이틀 없이 ‘김정일’이라고 하기도 했지만 그가 북한 지도자에 대해 존칭인 미스터를 사용한 것은 이례적이다.
▷부시 대통령은 그동안 김 위원장을 ‘독재자’ ‘압제자’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부르며 적대감을 나타냈다. 지난해 1월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한 뒤 2월 서울 방문 때는 김 위원장을 ‘굶주리는 국민을 방치하고 대량살상무기를 만드는 전제정권의 지도자’로 매도하기도 했다. 그동안 드러낸 적대감이 워낙 컸기 때문에 미스터라는 평범한 표현이 특별해 보이는 것이다. 더구나 부시 대통령이 “미국은 북핵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유화적 발언을 하며 그런 호칭을 사용했기 때문에 김 위원장에 대한 감정이 누그러진 게 아닌가 하는 분석이 나올 만도 하다.
▷호칭에 감정을 담는 부시 대통령의 버릇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그가 2001년 3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기자회견을 하며 사용한 ‘디스 맨(this man)’은 얼마나 오랫동안 한미관계를 불편하게 했던가. ‘미스터 김정일’이라는 표현이 ‘프레지던트 김정일’로 발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려면 김 위원장이 행동으로 부시 대통령의 적개심을 해소시켜야 한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사례에서 보듯 부시 대통령은 한 가지만 맘에 들면 친구 삼자고 나서는 사람이 아닌가.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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