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의원立法’ 실태-폐해]‘법안통과 쉽게’ 法제정 편법

  • 입력 2003년 7월 17일 20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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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의원입법.’

국회에 제출된 법률안 중 실질적으로는 정부가 만들었지만, 법안 발의는 의원 이름으로 하는 것을 국회 관계자들은 이렇게 부른다. 이런 입법행태는 행정부처간 합의가 어렵거나 사회적 찬반 논란이 많은 법안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정부로선 정부입법보다 의원입법으로 하는 게 절차와 시간을 대폭 줄이고, 정치적 부담도 크게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국회의원의 이름만 빌린 ‘무늬만 의원입법’은 헌법과 국회법의 책임입법 정신에 역행하고, 궁극적으로 의원의 입법 능력도 약화시킨다”고 비판하고 있다.

▽실태=15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박관용(朴寬用) 의장이 자동차와 프로젝션TV 등의 특별소비세 감면을 골자로 하는 ‘특소세법 개정안’의 가결을 선포한 뒤 국무위원석을 향해 쓴소리를 던졌다.

“정부가 의원입법으로 제출한 이 법안을 입법부인 국회와 전혀 상의도 없이 (추진해) 오히려 결과를 국회에 떠넘기는 것 같은 현상이 나타난 데 대해 정부의 반성을 촉구한다.”

재정경제부는 3일 특소세 인하 방침을 발표한 뒤 정작 법안은 민주당 김효석(金孝錫) 의원의 이름으로 제출했는데, 법안 심의가 늦어지면서 ‘국회 때문에 특소세 인하 조치가 늦어진다’는 여론이 일게 된 상황을 언급한 것이었다.

농림부는 정부에 대한 농민의 반발을 비켜가기 위해, 한국-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이행 특별법안을 민주당 정대철(鄭大哲) 대표 명의로 발의할 예정이다. 여성부는 5월 6일 국무회의에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호주제 폐지’를 담은 민법 개정안 제출을 보고하면서 의원입법으로 할 것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국책사업인 철도구조개혁을 위한 3대 법안도 이에 강력히 반대하는 노조의 반발을 피하고, 입법을 신속하게 하기 위해 민주당 주류인 이호웅(李浩雄) 의원 이름으로 발의됐다.

각 행정부처가 자신들이 추진하는 입법안에 대해 정부내 다른 부처의 반대를 피하기 위해 ‘무늬만 의원입법’을 선호하는 사례도 있다. 백두대간 보전 관련 법안은 환경부안과 농림부안이 각각 의원입법으로 제출돼 국회에서 ‘정부부처의 대리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태이다.

▽‘신(新) 통법부(通法府)’ 우려=여대야소의 권위주의 정권 시절엔 정부입법안을 여당이 별다른 비판이나 견제 없이 국회에서 통과시켜 ‘입법부=통법부’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데 여소야대 정부에선 ‘무늬만 의원입법’이 만연하면서 ‘신 통법부’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박수철(朴秀哲) 국회 의안과장은 “정부와 국회는 입법 활동을 통해서도 서로 견제해야 한다”며 “그런데 ‘내용은 정부입법, 형식은 의원입법’의 편의적 관행은 이런 삼권분립 정신에 어긋나고 책임입법을 위한 법안실명제 취지에도 역행한다”고 우려했다.

시간 절약을 위한 ‘무늬만 의원입법’이 국회 상임위간 대리전으로 오히려 입법을 더욱 지연시키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건설교통부가 주도한 의원입법인 ‘국민임대주택건설 특별법안’은 찬성하는 건교위 위원들과 환경문제를 이유로 이에 반대하는 환경노동위 위원들간의 대립이 가열되다 결국 1일 국회 본회의에 부결됐다.

국회 관계자는 “건교부와 환경부간의 이견도 다 조정되지 않은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며 “이는 ‘무늬만 의원입법’의 대표적 폐해 사례”라고 말했다.


무늬만 의원입법의 대표적 사례
법안명법안 주요내용비고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이행특별법안 FTA 발효로 인한 농가 피해 보전을 위해 7년간 800억원의 특별기금 조성-농림부 작성 법안이나 농민 반발 우려해 민주당 정대철 대표의 대표 발의로 조만간 국회 제출 예정
철도산업발전기본법안한국철도시설공단법안한국철도공사법안철도의 시설과 운영 분리를 뼈대로 하는 철도구조개혁 3대 법안-대표적 국책사업 관련 법안이지만 민주당 이호웅 의원 대표발의-한국철도공사법안만 국회 통과 안된 상태
특별소비세법 개정안승용차, 프로젝션TV, PDP TV에 대한 특별소비세 감면-재정경제부가 감세안 발표한 뒤 민주당 김효석 의원 명의로 개정안 국회 제출
민법 개정안호주제 폐지 등-여성부가 5월 6일 국무회의에서 보고한 뒤 법안은 민주당 이미경 의원이 대표발의
국민임대주택건설 특별법안그린벨트 안에도 임대주택 예정지구를 지정할 수 있도록 함-건설교통부와 환경부 간 이견이 있는 법안으로 국회 건교위의 한나라당 김학송 의원 대표발의-7월 1일 본회의에서 부결
백두대간보전관리법안산림청장이 10년마다 백두대간 관리 기본계획 수립-농림부 입장이 주로 반영된 법안-국회 농림해양수산위의 민주당 이정일 의원 대표발의
백두대간보전법안환경부장관이 10년마다 보전 기본계획 수립-환경부 입장이 주로 반영된 법안-국회 환경노동위 소속 민주당 박인상 의원 대표발의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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