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오전엔 "과거사 언급 안할것" 국회연설선 직설적 거론

  • 입력 2003년 6월 9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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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3박4일간의 방일(訪日) 마지막 일정인 9일 오전 일본 국회 연설을 통해 유사법제안과 과거사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했다.

방일기간 중 과거사 문제를 거의 꺼내지 않았던 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일본은 한때 제국주의의 길을 걸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 큰 고통을 주었다” “일본이 과거의 숙제를 다 풀지 못하고 있다”는 등의 직설적 표현을 동원해 과거사 문제를 집중 언급했다.

노 대통령의 연설 중 유사법제안와 관련한 “의혹과 불안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대목과 “이 같은 불안과 의혹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면…일본이 아직까지 풀어야 할 과거의 숙제를 다 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대목은 당초 원고에 없던 내용이다. 중의원 본회의장에 사전 배포된 일본어 번역본 연설문에도 이 내용은 들어있지 않았다.

이처럼 노 대통령이 두 사안을 새삼 거론하고 나선 데는 일본에 도착한 6일(현충일) 일본 참의원이 유사법제 3개 법안을 통과시켰는데도 노 대통령이 소극적으로 대응한 데 대한 국내 비판 여론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이번 방일의 최대 목적을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에 완벽하게 합의하는 데 두었다. 따라서 최대 현안인 북핵 문제 해결에 주력하면서 논란이 될 만한 다른 현안은 가급적 언급을 자제한다는 생각이었다.

이 문제에 관해 노 대통령은 9일 동행 기자들과의 조찬간담회에서도 “때때로 심경이 착잡했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를 거론하지 않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내 결정이 잘한 것인지 자문자답했다. 좋은 선택에도 항상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확고하게 성취해야 할 과제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과거사를 거론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에도 일본이 적당히 넘어가지 않느냐는 우려보다는 국내 여론이 더 두려웠다. 그러나 국내 여론에서 매를 좀 맞더라도 장기적으로 국가와 국민에 유익하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북핵 문제와 관련한 한일간의 미묘한 시각차에 대해선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모두발언을 통해 일본은 압력 쪽에 좀 기울어 있다는 느낌을 줘서 조금 당황했다”며 “공식적으로는 대화와 압력, 이 두개의 수단을 항상 동시에 구사한다는 것을 한미일의 합의 수준으로 해 두는 것이 적절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 사람들의 마음속은 대화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 같다”면서 “꿈보다 해몽이 더 중요하니 해몽을 더 잘해 달라”고 요청했다.

도쿄=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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