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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5월 7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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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성(李海成)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송 대변인을 문책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으나 청와대 안팎에서는 오래전부터 송 대변인이 대변인 역할 수행에 역부족이었다는 점 때문에 경질을 기정사실화해왔다.
실제 송 대변인의 교체는 이미 지난달 중순경 정책프로세스개선비서관실에서 비서실 업무평가작업을 마친 뒤 발표시점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이 수석을 중심으로 대안 물색에 나서 몇몇 현직 기자에게 대변인직 제의를 하기도 했으나 당사자들이 모두 고사했다는 후문이다.

송 대변인은 정치권이나 공직 경험이 전무한 데다 노 대통령의 ‘코드’에 익숙하지 않았던 탓에 실수를 연발했고, 이것이 교체사유가 됐다. 송 대변인은 이라크전 개전 당시 군의 경계상황과 관련해 “워치콘을 격상시켰다”고 브리핑해 북한측이 대화중단을 선언하는 파문을 빚기도 했다.
여기에다 지난달 초 “무슨 문제만 생기면 대변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이런 시스템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한 것이 결정타가 됐다. 당시 노 대통령은 송 대변인을 따로 불러 “좋지 않은 태도다”고 질책했고, 송 대변인 본인도 이때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왔다는 후문이다.
송 대변인은 이날 오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대변인이란 자리가 ‘전달자’ 역할을 하는 전문직으로 생각하고 맡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며 “내가 정치력이 부족했다”고 털어놨다.
송 대변인의 경질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취재시스템을 개편하면서 ‘대변인 브리핑제’를 중심으로 운영하겠다는 방침과 비정치인-전문직 출신을 대변인으로 기용한 인사가 실패로 돌아갔음을 청와대 스스로 인정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한편 청와대 소식지인 ‘청와대 브리핑’ 제작을 맡아온 박종문(朴鍾文) 국정홍보비서관은 청와대 브리핑이 송 대변인의 브리핑 내용과 종종 엇갈리면서 브리핑 시스템에 혼선을 가져온 데다 연설문 작성 업무와 브리핑제작팀이 통합되면서 이날 송 대변인과 함께 경질됐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윤태영 신임 청와대 대변인 ▼
윤태영(尹太瀛) 신임 청와대 대변인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386’ 참모 그룹 내에서는79학번으로 최고참이다.
노 대통령과는 1994년 자전적 에세이 ‘여보, 나 좀 도와줘’의 출간을 도우면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런 인연으로 문희상(文喜相) 의원의 보좌관이던 2001년 연세대 후배인 이광재(李光宰) 현 국정상황실장으로부터 민주당 경선에 나선 노 대통령의 경선캠프 합류 요청을 받고 홍보팀장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대통령당선자 비서실 공보팀장, 대통령 연설담당비서관으로 직책만 바뀌었을 뿐 계속해서 노 대통령의 ‘말과 글’을 관리하는 스피치 라이터를 맡아 왔다. 이 때문에 노 대통령의 발언 스타일과 속내를 가장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대통령비서실 인선과정에서 실시한 다면평가에서 1등을 할 정도로 동료와 후배들로부터도 신뢰받고 있다.
연세대 3학년에 재학 중이던 81년 5월 신군부의 광주학살을 고발하는 유인물을 작성한 탓에 구속돼 8개월 동안 복역했으며 한때 노동운동을 벌이기 위해 1년여 동안 철공소에서 용접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88년 대학 친구의 소개로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들어가면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다.
△제주 북제주군(42세) △연세대 경제학과 △이기택 민주당 총재 보좌관 △노무현 대선후보 비서실 연설문팀장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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