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정원장 임명강행, 국회 무시다

  • 입력 2003년 4월 24일 18시 41분


국회 정보위원회가 여야 합의로 고영구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에 대해 ‘부적절’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채택했는데도 노무현 대통령이 그대로 국정원장 임명을 밀어붙인다면 그것은 국회 경시(輕視)다. 더욱이 다른 적임자를 찾아본다거나 아니면 국회에 이해를 구하려는 최소한의 성의마저 보여주지 않고 보고서를 받자마자 임명을 강행한다면 국회 무시(無視)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그럴 경우 여러 가지 부작용과 후유증이 우려된다. 당장 행정부와 입법부의 관계부터 경색될 것이다. 특히 정부가 야당의 협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국회의 정상적 의사결정이 이렇게 간단히 묵살되는 현실에선 그런 기대조차 무리일 수 있다. 따라서 대화와 타협의 상생 정치는 상당 기간 실종될 수밖에 없다.

이제 첫걸음을 뗀 권력기관장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도 유명무실하게 된다. 아무런 구속력도 가지지 못하는 청문회를 굳이 왜 하느냐는 ‘청문회 무용론’마저 나올 정도다. 청문회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지 않은 것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국회 존중에 바탕한 정치적 구속력을 전제로 한 것이었으나 그마저도 시작하자마자 무너지게 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 정보위의 보고서 채택에 대해 민주당 내 진보성향 의원들이 반발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이중의 자기부정이다. 과정이나 절차에 아무 흠결없이 정상적으로 이뤄진 국회의 고유기능을 부인하는 것은 우선 의회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당 소속 의원들도 동의한 내용을 비난하고 번복하는 것은 정당정치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아가 당 소속 정보위원들이 보수파 일색이라며 교체까지 주장하는 것은 아무리 집안일이라고 하더라도 보기 민망하다.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국민대표성은 무시하고 정당의 일개 조직원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는 듯해서다. 여권의 신주류는 지금 한쪽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 식의 개혁이라면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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