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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4월 2일 1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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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은 국정연설 말미에 자신이 서 사장을 추천했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KBS 사장 임명과정에) 개입한 일이 없다고 말해 놓고, 이 같은 과정이 밝혀지고 나니 거짓말을 한 것 같아서 낯이 뜨겁다”고 말했다. 또 국회에서 청와대로 돌아오자마자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20여분 동안 적극 해명에 나섰다. 자신이 KBS 사장 선임과정에 개입했다는 그간의 소문이 사실임을 인정한 이상 뭔가 설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먼저 “당선자 시절에 박권상(朴權相) 전 KBS 사장이 3월경에 퇴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뒤 신뢰하는 몇몇 사람에게 적절한 후임자를 찾아달라고 했고 서 사장에게도 추천을 부탁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여러 사람을 추천받았는데 어떤 사람은 나이가 많고, 어떤 사람은 지금 하는 일이 워낙 중요하다고 해서 ‘연세가 많지만 서동구씨가 맡는 게 좋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고 자신에게 의견을 물어 왔다는 것. 노 대통령은 “(대선 때 언론고문을 맡는 등) 나와 가까운 사람이어서 의심을 받지 않겠느냐”고 했으나 추천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 언론계에서 존경받는 분이다”라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같은 자신의 뜻이 참모들을 통해 KBS 이사회에 전달됐을 것이라는 게 노 대통령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이해성(李海成)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박 전 사장이 노 대통령에게 서동구씨를 추천했고 개인적으로 박 전 사장이 이사회에 의견을 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후 KBS 노조가 서 사장이 사장으로 제청되는 것에 이의를 제기했고, 시민단체도 이에 가세하면서 노 대통령은 “노조의 뜻을 존중해 주기를 바란다”며 사실상 서 사장 추천의사를 철회하겠다는 뜻을 참모에게 전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그 같은 뜻은 KBS 이사 중 1명에게만 전달됐으며 나중에 ‘이사회는 노조의 의사를 존중할 의향이 없다’는 보고를 받고 그대로 놔두었다는 게 노 대통령이 밝힌 전말이다.
이 같은 해명은 지난달 26일 유인태(柳寅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사석에서 “노 대통령이 서동구씨에게 KBS 사장직을 맡아달라고 요청했지만 서씨가 세 번이나 고사했고, 네 번째 요청 뒤 수락을 받았다”고 밝힌 것과는 다소 차이점이 있다. 유 수석에 따르면 주변의 건의에 따라 서 사장을 추천한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거의 ‘강권’에 가까운 요청을 했다는 얘기다.
또한 서 사장을 추천키로 한 의사결정과정에 누가 관여했으며, 이를 KBS 이사회에 어떤 경로를 통해 전달했는지도 불분명하다. 유 수석은 당시 “이사회에 대통령의 뜻이 어떻게 관철됐는지는 모른다”고 말해 청와대의 공식라인이 아닌 다른 선에서 관여했음을 시사했었다.
이날 노 대통령은 그와 관련된 질문에 대해선 답변을 피하면서 “서 사장을 검증하고 추천하는 과정을 공개했어야 하는데 공개하지 않은 게 내 불찰이다. 앞으로 공개적으로 이 과정을 밟아 나가겠다”고 말해 추후에는 아예 공개적으로 특정인사를 추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한 언론학자는 “임명권을 쥐고 있는 대통령이 특정인사를 추천할 경우 이사회는 다른 인사를 제청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노 대통령의 언급은 공영방송의 독립성 보장 취지에서 마련된 이사회의 제청절차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노대통령-KBS노조 간담회 …후임사장 인선 혼선▼
서동구(徐東九) KBS 사장이 2일 사직서를 제출한 뒤 후임 사장 인선 문제를 놓고 임명권자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제청권자인 KBS 이사회 그리고 서 사장 인선에 반대했던 KBS 노조와 시민단체들이 각기 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KBS 새 사장 인선이 상당기간 표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2일 밤 KBS 노조와 참여연대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등 시민단체 대표 등 관련자 5명을 청와대로 초치해 2시간여에 걸친 만찬 간담회를 갖고 “KBS 이사회가 새 사장을 제청하겠다는 뜻을 표명해 오면 서 사장이 제출한 사표를 수리하겠다”는 ‘조건부 사표 수리’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KBS노조와 시민단체 대표들은 “KBS 이사회가 새 이사회를 구성해 후임 사장을 제청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서 사장의 사표를 수리할 것을 거듭 요청했다.
한편 KBS 이사회 지명관(池明觀) 이사장은 서 사장의 사의 표명 이후 성명을 내고 “이사회는 서 사장의 사퇴서 처리에 대해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최종 결정을 기다리겠다. KBS 사장 선임을 재검토할 경우 이사회는 독립성을 가지고 민주적 절차에 따라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혀 ‘사표 수리 뒤 후임 인선’ 방침을 표명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이사회의 뜻을 존중하겠다는 취지이나 사장 선임과 관련해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 이사장이 밝힌 대로 KBS 사장에 대한 사표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먼저 수리한 뒤에야 이사회가 새로운 인사를 제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KBS 이사회를 새로 구성하는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현 KBS 이사들의 임기는 5월 15일 만료되나 이사회를 새로 구성하려면 KBS 이사 추천권을 가진 새 방송위원회가 먼저 구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방송위는 2월 중순 임기가 끝났으나 새 방송위 구성에 대한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협상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다.
KBS 이사들 중에는 노 대통령의 국회 국정 연설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이도 있는 데다 KBS 노조도 ‘이사회 책임론’을 주장하고 있어 이사진이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할 가능성도 높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방송계의 촉각은 ‘후임 사장’ 후보들에게 모아지고 있다. KBS의 한 고위 간부는 “KBS 이사회가 ‘국민 추천’을 받은 40여명 중에서 최종 후보로 꼽힌 이들이 유력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이번 인선 때 서 사장과 경합한 최종 후보들은 성유보(成裕普) 민언련 이사장, 정연주(鄭淵珠) 전 한겨레신문 논설주간, 황정태(黃正泰) KBS 이사, 황규환(黃圭煥) 스카이라이프 사장이었다.
특히 노 대통령이 후임을 결정할 때 KBS 노조의 지지를 중요 인선 기준으로 꼽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검증된 인사 중 노조가 반대하지 않을 사람이 경쟁력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KBS 새 사장은 서 사장의 사표 수리 후 30일 이내 임명돼야 하며 임기는 서 사장의 잔여 임기인 5월 22일까지다.
허 엽기자 heo@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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