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지휘부 결단 내려야” '인사파동' 쇼크

  • 입력 2003년 3월 7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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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파동’에 휘말린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과 서울지검 청사는 7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이날의 날씨처럼 줄곧 어두운 분위기였다.

검사들은 이날 오전 9시에 열린 김각영(金珏泳) 검찰총장과 강금실(康錦實) 법무장관의 회동에 한가닥 ‘희망’을 걸었지만 의견 접근이 전혀 안된 것으로 전해지자 허탈감과 자괴감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지검의 한 소장 검사는 “이제 지휘부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검사는 “검찰의 의견을 무시한 인사는 검찰에 정치적 족쇄를 채우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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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총장은 이날 강 장관에게 ‘인사안을 재고(再考)해야 한다’는 뜻을 강하게 전달했다. 김 총장이 6일 강 장관에게 전달한 건의문에도 검찰의 정치적 독립은 공정한 인사와 신분 보장이 바탕이 돼야 하며, 이런 절차가 무시된 이번 인사안은 다시 짜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강 장관의 생각은 달랐다. 강 장관은 김 총장을 만난 직후 법무부 이춘성(李春盛) 공보관을 통해 “총장이 나름대로 의견을 개진했지만 원칙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오후에는 “총장과 8일 다시 만나 의견을 조율하겠다”고 다소 물러섰지만 인사 원칙을 지킨다는 자세에는 변함이 없었다.

대검과 서울지검에서는 하루종일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화두(話頭)로 한 직급별 회의가 이어졌고 오후 5∼6시 정리된 의견을 쏟아냈다. 먼저 서울지검 부장 및 부부장검사 40명이 오후 5시경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준사법기관으로서 위상에 걸맞은 공정한 인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곧이어 대검 과장급 이하 검사 30여명도 ‘우리의 입장’이라는 발표문을 통해 “검찰인사위원회에서 인사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의 분위기도 민감한 외부 상황에 맞춰 수시로 변했다. 오전에 검찰 반발에 대한 청와대의 ‘징계’ 방침이 전해지자 불에 기름을 끼얹은 듯 격앙됐던 분위기는 오후에 강 장관의 구체적인 인선안 재검토 소식이 전해지면서 다소 수그러들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은 달라질 게 없다’는 인식이 다시 커지면서 ‘밀실 인사를 중단하라’ ‘수뇌부는 직위를 걸고 검찰의 독립을 지켜내라’는 내용을 담은 서울지검 평검사 70여명의 강한 의견 표출로 이어졌다.

평검사 회의는 줄곧 격앙된 분위기였으며, ‘정치권의 검찰 장악 의도이며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검찰권을 훼손하고 있다’는 강경론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검찰이 자초한 일이라는 반성의 목소리도 일부 검사들 사이에서 나왔다. 대한변호사협회와 참여연대 등 재야 법조계와 시민단체에서도 “공정한 검찰 인사가 정착될 때까지 과도기적인 변화는 그동안 독립성을 지키지 못한 검찰이 감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종찬(李鍾燦) 서울고검장과 김승규(金昇圭) 부산고검장, 한부환(韓富煥) 법무연수원장 등 고검장 3명은 이날 퇴임식을 갖고 검찰을 떠났다. 이들은 “민주 정부가 검찰의 독립성이나 중립성을 훼손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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