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미군 배심원들이 한국 내 여론을 의식할 의무는 전혀 없지만 이번 평결 결과가 대다수 한국민의 정서와 배치된 것임은 분명하다. 정치권은 물론 심지어 법무부까지 나서 한목소리로 이번 평결에 유감을 표명한 것은 그 같은 국민 여론을 반영한 것이다. 꽃다운 여중생 두 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에 대해 관련자가 어떤 형태의 형사적 책임도 없다는 것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만약 피의자가 한국 법정에 섰더라도 똑같은 결론이 나왔을까.
그렇지 않다면 근본적인 문제는 불평등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공무 중 범죄에 대해 미군이 1차 재판관할권을 갖도록 돼 있는 조항이 바뀌지 않는 한 이번과 같은 일은 언제든지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무 중 미군 범죄라도 최소한 한국 민간인의 재산과 생명에 관련되는 사안은 한국측이 1차 재판관할권을 갖도록 하는 개정이 요구된다.
이번 사건의 경우 한국 검찰은 미군측에 재판관할권 포기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그 결과 전원 미군 장병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무죄 평결을 내놓았고 그것이 한국민의 정서를 자극한 것이다. 이번 일이 반미감정을 부추기는 데 악용될 경우 미국이 입을 손실은 SOFA를 재개정해서 잃는 것보다 더 클 수 있다.
이번 일을 놓고 일부 시민단체가 지나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잘못이다. 특히 미군부대 진입을 시도하는 등 성숙하지 못한 행동은 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이번 일이 한미관계를 불필요하게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면 그것은 한미 양국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번 불행한 사고가 SOFA 개정 등 한미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계기가 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