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만에 일본 공기 마신다”…납북日人, 가족과 눈물의 재회

  • 입력 2002년 10월 15일 18시 08분


24년만에 고국 땅을 밟은 피랍 일본인 5명이 15일 오후 하네다 공항에 도착, 전용기 트랩을 내려서고 있다. - 아사히신문 사진
24년만에 고국 땅을 밟은 피랍 일본인 5명이 15일 오후 하네다 공항에 도착, 전용기 트랩을 내려서고 있다. - 아사히신문 사진
‘기적의 귀국, 운명의 재회.’

피랍 일본인 5명의 24년만의 일시 귀국을 일본 언론들은 이렇게 표현했다. 이들은 15일 오후 2시반 일본 정부 특별기편으로 하네다(羽田)공항에 도착해 대기중이던 가족들과 재회했다. 극적인 이 순간을 전 일본인은 숨 죽이며 지켜봤다.

○…피랍 일본인들을 태운 비행기가 오후 2시반 착륙하자 아베 신조(安部晉三) 관방부 장관이 먼저 기내에 들어가 이들을 안내. 처음에 지무라 야스시(地村保志)와 하마모토 후키에(濱本富貴惠) 부부가 트랩을 내려오고 이어 하스이케 가오루(蓮池薰)와 오쿠도 유키코(奧土祐木子) 부부가 팔짱을 끼고 천천히 내려왔다. 월북 미군과 결혼한 것으로 알려진 소가 히토미(曾我ひとみ)는 마지막으로 혼자서 내려왔다. 이들은 활주로에 내리자마자 가족들과 어깨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한참동안 대화를 나눈 뒤 가족들의 손을 꼭잡고 공항 귀빈실로 향했다. 5명은 모두 정장 차림에 건강한 모습. 왼쪽 가슴에는 김일성 배지를, 오른쪽 가슴에는 푸른 리본을 달고 있었다.

○…공항에 마중 나온 가족들은 모두 50여명. ‘어서 돌아오세요’라는 현수막을 흔들며 꽃다발을 전달했다. 사망 통보된 피랍자의 가족들도 함께 나와 귀국자들을 맞으면서 혹시나 사망자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들은 귀국자가 동의할 경우 면담을 갖고 사망자 정보 등 북한 상황을 물어볼 계획. 이들 가족들과 귀국자들은 하네다공항에서 리무진 버스 3대에 나눠 타고 도쿄로 들어가 시내 호텔에서 이틀밤을 묵은 뒤 고향인 니가타(新潟)현과 후쿠이(福井)현으로 돌아가 1, 2주일 더 지낼 예정이다.

○…오전 6시반 하네다공항을 출발해 평양에서 이들을 태우고 돌아온 일본 정부 특별기에는 나카야마 교코(中山恭子) 내각관방참여와 사이키 아키다카(齋木昭隆)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 참사관, 의무관 등이 탑승. 돌아오는 길에는 북한 적십자회 직원 두 명이 동행, 피랍자 5명이 북한으로 되돌아갈 때까지 일본에 머물 계획이다.

나카야마 참여는 이날 북한으로 출발하기 전 피랍자들 가족이나 친척, 고향 동창생들로부터 편지나 사진 등을 받아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피랍자들에게 전달했다. 피랍자 가족들은 전날밤 미리 디지털 카메라로 “건강한 얼굴을 보고 싶다”는 등 각자의 메시지를 담은 영상을 촬영해 귀국편 비행기 안에서 볼 수 있도록 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공항에는 나가지 않았으며 가능한 한 냉정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담화를 통해 “5명이 귀국할 수 있게 돼 마음으로부터 기쁨을 전하고 싶다. 고향에서 가족들과 편히 쉬면서 그동안 겪었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일시 귀국이 납치문제의 전면 해결은 아니다”면서 5명과 면회하지 않을 방침임을 밝혔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도 “요청이 있으면 막지는 않겠지만 납치문제가 미해결된 상태에서 만나야 할지 의문이다”고 부연.

○…경찰청은 북한의 납치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일시 귀국 피랍자 5명을 상대로 그간의 경위를 들을 수 있도록 내각부 등에 요청할 방침. 본인들이 동의할 경우 5명의 납치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니가타, 후쿠이 두 현경(縣警)이 조사를 하게 된다.

특히 경찰청은 니가타에서 모친과 함께 실종됐던 소가 히토미의 사례에 주목하고 있다. 소가씨는 97년 8월 모친과 함께 있던 중 남자 세 명이 덮쳐 데려갔다고 말했지만 북한측은 “알지 못한다”고만 밝히고 있어 어느 쪽이 진실인지 규명에 착수할 예정.

○…피랍자 5명의 고향에서는 마을사람들이 모두 마을회관 등에 모여 TV를 통해 이들의 귀국 모습을 지켜봤다. 소가씨의 고향인 니가타 주민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모친과 꼭 닮았다.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건강한 얼굴이어서 무엇보다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들 고향에서는 ‘어서 돌아오세요’라는 등의 대형 현수막을 내거는가 하면 친척 주민 동창생 등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환영 파티도 준비중.

한편 NHK방송은 물론 니혼TV 등 민영방송들도 모두 정규방송을 중단한 채 이날 오후 내내 피랍자 귀국 장면을 생중계로 보도. NHK의 한 아나운서는 “납치 생존자들이 무려 24년만에 일본의 공기를 들이마시게 됐다”고 말했다.

도쿄〓이영이특파원 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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