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성동기/'입'막는다고 기강 잡힐까

  • 입력 2002년 10월 8일 18시 49분


정부가 흐트러진 공직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고삐를 조이겠다고 나섰다. 김석수(金碩洙) 국무총리는 8일 각 정부 부처에 ‘대통령 임기말 공직기강 확립에 관한 특별지시’를 내렸다. 정치적 중립 훼손행위나 기강해이 공무원은 엄중 문책하겠다는 것이 요지다.

공무원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너도나도 자신이 좋아하는대통령후보 쪽으로 줄서기를 해서 일신의 영달만을 꾀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덮어둔 채 무조건 “해서는 안 된다”고 강요한다고 해서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철용(韓哲鏞·육군소장) 전 5679부대장의 폭탄선언이 대표적인 사례다.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군인이, 더군다나 현역 장성이 군 지휘부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는 점에서 ‘공직기강 해이’라고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과의 관계개선만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지휘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사실을 일부러 과소평가하거나 묵살했다면 북한군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현 국방백서의 당위성은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

국무총리가 특별지시를 했다고 해서 공직기강이 하루아침에 바로 설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더욱 은밀하게 정치권에 줄을 대거나 정보를 유출하는 사례가 벌어질지 모를 일이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김대중(金大中) 정부 5년간 국정운영이나 인사가 원칙에 맞게 이뤄져 왔느냐를 따져 보는 일이다. 현대상선을 통한 4억달러 대북 비밀지원 논란만 해도 그렇다.계좌추적만 하면 바로 드러날 일을 정부는 “안 된다”고만 하고 있다. 떳떳하다면 오히려 스스로 계좌추적에 나서 야당의 주장이 정치적 공세라는 것을 밝혀야 하는 것이 아닐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정부가 스스로 공무원들에게 줄서기나 줄대기를 강요해 오지는 않았는지를 돌이켜보는 일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살아온 공무원들이 이제 또 다른 방법으로 살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 공직기강해이로 나타난 것이라는 지적이 많기 때문이다.

임기말이면 의례적으로 나타나는 게 레임덕 현상이라고 하지만 역대 정부에 비해 현 정부에서 더 빨리 나타나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성동기기자 정치부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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