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 일단모든 대화채널은 열지만…

  • 입력 2002년 8월 4일 18시 15분


남측 이봉조 대표(왼쪽)과 북측 최성의 대표 -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남측 이봉조 대표(왼쪽)과 북측 최성의 대표 -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4일 7차 남북장관급회담 실무대표팀이 만들어낸 공동보도문 합의내용은 기대 이상의 성과라는 평가다.

올해 4월 임동원(林東源) 대통령외교안보통일특보의 방북시 합의한 4·5공동보도문에 나열됐던 의제들이 ‘협의 해결 과제’로 모두 망라돼 있을 뿐만 아니라 9월에 개최되는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에 북한 선수단을 보내기로 북한이 약속했기 때문이다. 또 이번 합의로 기존에 남북간에 진행돼오다 중단된 각종 대화채널이 거의 모두 재가동되는 셈이 됐다.

북측이 적극적인 대남 자세로 선회한 배경은 우선 지난달 초 단행된 경제개혁조치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쌀값을 중심으로 배급가격을 시장가격 수준으로 현실화시키려고 하니 여기저기서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 남북관계를 원상회복시켜 여기에서 최소한의 생존근거를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또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과 북-일 관계 개선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 먼저 남북관계 개선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종석(李鍾奭)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의 경제개혁조치가 성공하지 못할 경우 북한 체제가 심각한 난관에 부닥친다”며 “단지 대외관계만 의식했다면 이렇게까지 많은 사안에 대해 합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중장기적인 남북 관계를 고려한 계산이라는 시각도 있다.

올해 말 대통령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남북관계를 크게 바꿔놓지 못하게 하기 위해 현 정부 임기 내에 남북관계를 급진전시켜 놓으려 한다는 것. 고유환(高有煥) 동국대 교수는 “북한은 남한의 다음 정권에서 ‘남북관계를 재설정하자’고 나오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풀이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일각에서는 남북간의 모종의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가 있지 않았느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없지 않다. 그런 의심까지는 아니더라도 북측이 남북관계 복원에 적극적으로 돌아섬에 따라 반대급부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쌀 30만t 지원은 물론 추가적인 식량 지원이 추진될 수 있으며 금강산 관광 활성화 추가조치 등의 반대급부설도 나오고 있다.

여하튼 이번 합의가 남북관계 진전으로 연결되느냐의 시금석은 경의선 연결에 맞춰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종석 연구위원은 “군당국간 합의서가 교환되고 비무장지대에서 첫삽을 뜨는 상황이 온다면 남북관계에 큰 변화가 왔다고 볼 수 있다”며 “이 밖에도 장관급회담도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성급한 기대는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제7차 장관급회담 주요 의제
내용시작경과전망
경의선 연결2000년 9월 제1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경의선 연결 및 문산∼개성간도로개설에합의-2000년 9월 경의선 연결공사 착공-2001년 2월 남북군사회의에서 비무장지대 공동규칙합의서에 의견일치-비무장지대 1.8㎞ 구간을 제외한 남측 경의선 구간 공사 완료-북측은 2001년 겨울 이후 공사 중단남북군사회담에서군사보장합의서 채택 필요경제협력추진위원회 개최시 논의
동해안 철도 및 도로 연결-도로는 현대와 북한 아태평화위가 2001년 6월 합의-2001년 10월 금강산 당국회담서 논의2002년 4월 임동원 대통령특보 방북시 합의
개성공단 건설2000년 8월 현대와 북한아태평화위가합의-경추위 1차 회의에서 2001년 2,3월중 실무협의회 개최키로 합의했으나 성사 안됨-남북관계 경색으로 진전 없음개성공단 건설시 입주기업 위한 전력지원 추진
임진강 수해방지1999년 합의-남북관계 경색으로 진전 없음공동조사 뒤 강우량과 수위 관측소 설치해 공동운영 추진
금강산 관광활성화 당국회담2001년 9월 홍순영 통일부장관이 제의-2001년 10월 1차 금강산 당국회담 개최-1차 회담에서 2001년 11월 2차 회담 갖기로 합의했으나 무산관광특구 지정, 육로개설 등 논의
이산가족교환방문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합의로 그해 8월 1차 교환방문 성사-2000년 11월 2차 교환방문(서울,평양)-2001년 2월 3차 교환방문(서울,평양)-2001년 3월 남북 첫 이산가족 서신교환(각 300통)-2001년 10월 북한, 이산가족방문단 교환 연기 발표-2002년 4월 4차 교환방문9월 추석 전후 유력
장관급회담2000년 6월 정상회담 합의로 그해 7월 1차 회담 서울에서 개최-2000년 8월 2차 회담(평양)-2000년 9월 3차 회담(제주)-2000년 12월 4차 회담(평양)-2001년 3월 북한, 5차 회담 연기 -2001년 9월 5차 회담(서울)-2001년 11월 6차 회담 결렬(금강산)7차 회담 2002년 8월 12∼14일 개최
경제시찰단 파견2002년 4월 임동원 대통령특사방북시합의-2002년 5월 파견 무산
군사당국자회담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2000년 9월 국방장관회담(제주)
부산아시아경기대회 참가대회 개막 1년전인 2001년 9월 29일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소속 43개 회원국에 초청장 발송-6월2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체육위원회 앞으로 대북 서한문 발송해 참가 재권유-7월29일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김운용 IOC 위원에게 서한을 보내 20일 모나코에서 남북체육회담 제의시간이 촉박하지만 남북단일팀 구성과 개회식 동시입장, 백두산 성화 채화 문제 등 논의
남?

2002년 6월 유럽-코리아재단 이사 자격으로 방북한 박근혜(朴槿惠) 의원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9월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남북축구 경기개최 합의-2002년 6월23일 북한 조선중앙TV가 한국과 이탈리아의 월드컵 16강전 주요 장면을 녹화 방송-6월30일 이광근 북한축구협회 위원장이 월드컵 성공개최 축하 서신 전달-7월25일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이 이광근 북한축구협회 위원장에게 보낸 서신에서 교류 확대를 위한 논의를 갖자고 제안경평축구 부활로 남북축구 교류 정례화 및 각종 국제대회 남북 단일팀 구성이 교류 확대 관건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유감표명’시종일관한 北…‘도발사과’끝내 못짚은 南▼

장관급 회담 실무접촉에서 북한측은 예상외로 적극적인 ‘보따리’를 풀어놨지만 정작 6·29 서해교전에 대해서는 지난달 25일 전화통지문의 ‘유감 표명’ 수준으로 일관했다.

교전 이후 첫 남북 당국간 회담인 이번 접촉에서 남측은 일단 수석대표 단독 접촉을 통해 우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보다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정세현(丁世鉉) 통일부장관도 2일 대표단 출발 직전 “짚을 것은 짚어야 한다”고 말했었다.

북측은 우리의 요구에 대해 3일 전체회의 기조발언을 통해 거듭 유감을 표시하고 함께 재발방지에 노력하자는 뜻을 밝혔다고 우리 대표단은 설명했다.

북한은 이에 앞서 2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유감 표명’은 솔직하고 진지한 태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는 “북측이 일단 이 수준에서 사과의 뜻을 수용해달라고 ‘읍소’한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공동합의문에는 이 내용이 명문화되지 않아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더욱이 북한은 남북 실무접촉이 열리고 있는 3일에도 노동신문을 통해 “서해교전의 책임은 미국과 남한의 호전세력에게 있으며 북방한계선(NLL)을 주장하는 것은 우리에 대한 도전”이라고 주장하는 등 여전히 이중적인 모습을 나타냈다.

정부는 6일 열릴 예정인 북한과 유엔사간의 장성급 회담이나, 이번 실무접촉에서 합의한 군사당국자간 회담에서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 등을 계속 거론하겠다고 밝혔다. 군 고위 관계자는 “교전 이후 고착상태인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선 어떤 형태로든 보다 진전된 북측의 사과 표명이 선결조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더 많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南대표 “쌀 지원문제는 논의안해”

이봉조(李鳳朝) 서영교(徐永敎) 남측 대표는 4일 저녁 서울 귀환 직후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에서 정세현(丁世鉉) 통일부 장관과 함께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두 대표는 “남북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합의보다 이행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북측을) 처음부터 끝까지 강하게 밀어붙였다”라고 말했다.

정 장관은 특히 북한 선수단의 아시아경기 파견에 대해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사변’이다”라고 덧붙였다.

-북측의 서해교전 언급에 변화가 없는데….

“수석대표 접촉을 통해 사과 및 재발방지책 마련, 책임자 처벌 등 우리측의 일관된 입장을 전달했다. 판문점 장성급 회담이 모레(6일) 열리는데, 서해교전은 정전협정 위반인 만큼이 회담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올바른 접근법이다.”

-쌀 지원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나.

“논의되지 않았다. 구체적인 논의는 남북 경협위에서 북측이 거론할 것으로 본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향후 남북관계 전망▼

금강산 실무접촉에서 그동안 경색됐던 남북관계를 '원상회복'시킬 수 있는 각종 당국간 및 민간 레벨의 대화와 교류에 합의함으로써 향후 남북 관계는 급물살을 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특히 지난주 열린 브루나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회의에서 북한이 북-미,북-일 대화 재개를 이끌어낸데 이어 이번 실무접촉에서도 북한선수단의 부산 아시아경기 참가 등 예상을 뛰어넘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자 남북관계 개선의 청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북측은 또 20개월이나 중단됐던 주한유엔군사령부와 북한군의 장성급 회담 수용의사까지 밝혀놓은 상황이다.

물론 장관급 본회담을 지켜봐야 북한의 진의를 좀 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의 경우 정부 관계자는 "적십자 회담이 열리면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면회소 개념으로 발전시키고, 서신교환과 생사 주소확인 등 이산가족 교류의 제도화를 위한 논의도 이뤄질 것이다"라며 기대를 표시하고 있다.

군사 당국자간의 회담 재개도 초점. 특히 서해교전사태 이후 군사적 신뢰구축 등 긴장완화을 위한 보다 분명한 조치가 최대 현안으로 부상해 여론의 관심도 높다.

정부당국자들은 2000년 11월 중순 백두산에서 개최키로 합의했다 무기연기된 2차 국방장관 회담의 성사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회담 재개가 합의될 경우 서해상의 무력충돌 방지논의, 양측 군사직통전화 설치, 대규모 군사훈련 참관단 교환 등을 통한 군사적 신뢰구축의 돌파구가 열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방부측은 "그러나 군사실무회담에 그칠 경우에는 경의선 연결공사를 위한 비무장지대내 공사합의서의 서명 교환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향후 남북관계 주요 일정
8월6일유엔사북한장성급회담(판문점)
7일경수로 콘크리트 타설 기공식(북 신포 금호지구 현장)
12∼14일7차 남북장관급 회담(서울)
15, 16일8·15 민족통일행사(서울)
9월8일 남북축구대회(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29일∼10월14일14회부산아시아경기대회(부산)
미 정남북여성 통일대회(금강산)
남북청년 통일대회(금강산)
4차 남북적십자 회담
남북경제협력추진위 2차 회의
금강산관광 활성화를 위한 2차당국회담
북측 경제사절단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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