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제성호/탈북, UNHCR 개입해야

  • 입력 2002년 6월 24일 18시 43분


최근 탈북자문제가 새로운 기류를 타고 있다. 우선 북한을 의식해 중국이 한국대사관(영사부)에 진입한 탈북자들의 신병인계를 우리측에 강력히 요구하던 당초의 입장에서 후퇴해 제3국 경유 한국행을 허용했다. 중국이 강경 입장을 바꾸어 인도주의를 택한 것이다.

또한 탈북자문제가 국제적 인권사안으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미국 상원과 하원에서 11일과 19일 각각 탈북자 결의안이 통과된 데 이어 21일 상원 법사위원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는 탈북자에 대한 난민지위(P-2지위) 부여, 탈북자 난민촌 건설, 미-북 대화의 의제화, 한국의 탈북자 수용지원 방안 등이 깊이 있게 논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동안 탈북자문제에 신중한 접근을 하던 미국이 본격적인 개입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美의회 움직임 中호응 미지수▼

이와 같은 중국 정부의 입장 변화와 미국 의회의 움직임은 금년 들어 현저하게 증가한 ‘기획망명’에 의해 촉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그간 일부의 곱지 않은 시각에도 불구하고 숱한 위험을 무릅쓰고 기획망명을 연출한 민간단체들의 활약상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획망명이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중국이 공동발표문에서 “외교공관이 탈북자들의 탈출행로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것이나 한국공관 무단진입과 외교관 폭행에 대한 공식 사과 없이 포괄적인 유감표명만으로 사건을 서둘러 봉합한 것은 향후 유사사건의 재발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를 다각도로 강구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중국은 ‘정당한 공무집행’임을 들어 탈북자들에 대한 가택수색·검문, 외교공관 출입통제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번의 탈북자 처리도 일과성 조치일 공산이 크며 중국의 근본적인 정책 변화로 평가하기에는 이르다.

일련의 한국공관 경유 기획망명 성사와 미국 의회의 논의가 갖는 의미는 ‘탈북자문제의 국제화’와 국제사회의 ‘인도적 개입 여건 조성’에서 찾을 수 있다. 그동안 중국은 탈북자문제는 중국-북한간의 문제이므로 제3국과 국제기구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강변해 왔는데 이러한 입장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탈북자문제가 중대한 국제 관심사로 부각된 만큼 한중 양국은 그에 걸맞은 근본해법을 강구해야 마땅하다. 기획망명 발생 때마다 ‘수시외교’를 통한 대증요법적 해결에 만족하는 것은 장기 불법체류자로 불안한 삶을 살고 있는 대다수 탈북자들의 인권을 방치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총체적으로 탈북자들은 끊임없는 체포와 강제송환 위협 속에서 자유와 생존을 향한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들로서 최소한의 보호와 지원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소위 ‘인도적 난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세계 각지에서 ‘인도적 난민’들의 구호활동을 수행하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의 접근과 지원(즉 국제관리와 보호)이 허용돼야 한다.

지금 미국이 의회 차원에서 탈북자문제 해결방안을 논의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긴 하지만 미국 주도의 탈북자 지원 프로그램에 중국이 얼마나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그러기에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면서 순수한 인도적 차원의 난민구호활동을 전개하는 UNHCR의 개입이 더욱 적절하다고 하겠다.

▼국경에 정착촌 설치 바람직▼

UNHCR는 국내외 민간단체들과의 협조 하에 중-북한 또는 중-몽골간 국경 부근에 ‘정착촌 개념’의 수용시설을 설치해 ‘유엔특별관리구역’화하고 여기서 탈북자들에게 ‘일시적 피난민’ 지위 부여와 더불어 각종 구호와 지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UNHCR의 개입은 중국으로서도 탈북자문제 대응에 대한 국제적 비난을 잠재우면서 공정하고도 인도적인 처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와 함께 변경지역에 남북한 및 중국 등이 합영방식으로 농장이나 기업을 설립해 탈북자를 흡수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UNHCR의 개입에 중국이 동의하느냐에 있다. 최근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의 여론과 진전된 분위기를 최대한 활용한다면 점차 중국의 입장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정부는 다양한 해결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보다 적극적이고 입체적인 탈북자 외교를 펼쳐야 할 것이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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