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재보선후 재경선' 카드 왜 꺼냈나

  • 입력 2002년 6월 17일 18시 48분


'심각한 민주당' - 박경모기자
'심각한 민주당' - 박경모기자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가 17일 전격 제안한 ‘8·8 재·보선 후 재경선’ 방안은 지방선거 참패와 재신임 문제로 촉발된 당내 권력투쟁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승부수의 성격이 짙다.

노 후보의 이날 제안은 △8·8재·보선 이후 국민경선 재실시 △당 지도체제의 현상유지 △8·8재·보선을 위한 특별기구 구성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노 후보가 중도 낙마(落馬)의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경선’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당내 반노(反盧) 진영에서 제3인물 영입을 통한 후보교체론을 제기하는 등 본격적인 ‘노무현 흔들기’가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그동안 노 후보는 재신임의 방법과 절차는 전적으로 당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태도를 취하면서도 내심 재신임을 당내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는 상황 반전의 계기로 삼으려 했었던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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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6일 오후부터 참모진 내부에서 당내 문제를 명쾌하게 정리하지 않고서는 본선경쟁력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정면승부를 걸자는 쪽으로 입장이 최종 정리됐다는 후문이다.

외견상 노 후보의 재경선 제안은 당 일각에서 주장한 외부인사 영입과 재경선 실시를 수용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재신임의 시점을 재·보선 이후로 미룬 데다 한화갑(韓和甲) 대표체제의 현상 유지를 주장하는 등 오히려 당내 분란을 조기 봉합하겠다는 쪽에 훨씬 무게가 실려 있다.

지방선거 직후 “재·보선은 재·보선일 뿐”이라고 말했던 노 후보가 이날 “재·보선에 전력투구해야 민주당이 살 수 있다”며 후보공천을 위한 특별기구 구성을 제안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재·보선 총력체제를 명분으로 당권파가 전권을 위임받음으로써 조기 전당대회 소집 요구와 후보직 사퇴 및 지도부 인책론을 일거에 가라앉히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지방선거 직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큰 폭의 하락세로 나타난 것도 노 후보의 결심을 재촉한 요인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 후보가 17일 “(후보 교체를) 한 명이 주장하든, 두 명이 주장하든 국민은 내가 심각하게 흔들리는 것으로 생각할 것 아니냐. 국민이 보는 앞에서 명쾌하게 결론짓자”고 말한 것도 재경선 카드가 당내 동요 확산에 따른 지지율의 추가하락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노 후보의 재경선 카드가 당내 분란을 더욱 확대 재생산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노 후보의 의도대로 민주당이 8·8재·보선 총력체제로 전환하면서 당내 분란을 봉합할 경우엔 노 후보에게 다시 힘이 쏠리겠지만, 후보직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질 경우엔 자칫 사태가 수습불능의 상황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 후보의 제안 직후 이인제(李仁濟) 의원 지지그룹 의원들이 ‘후보직 유지를 위한 시간 벌기’라며 반발하고 나선 것도 이번 사안이 당내 각 세력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쉽게 수습되기 어려운 난제임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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