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후보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 기조연설문

  • 입력 2002년 5월 14일 14시 23분


안녕하십니까.

노무현입니다.

오늘 저는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후보 자격으로는 처음 공개토론에 나왔습니다. 뜻 깊은 자리를 만들어 주신 언론인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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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릴 말씀은 많지만 시간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기조연설에서는 주로 제가 대통령이 되어 이루려고 하는 정치적 과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정치개혁과 제가 추구하는 정치적 리더십이 어떤 것인지 밝히겠습니다.

우리 국민은 지난 반세기 동안 위대한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전쟁의 폐허 위에 고도산업사회를 세웠습니다. 국민경제 규모를 백 배 넘게 키웠고,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무역강국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인권과 민주주의를 쟁취했습니다. 4.19혁명과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민주항쟁을 비롯하여, 수많은 시련과 고비를 넘었습니다. 국제사회에 떳떳하게 자랑할 수 있는, 정통성 있는 민주공화국을 세운 것입니다.

많은 결점이 있기는 하지만, 교육과 문화의 영역에서도 우리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밥을 굶으면서도 자식을 교육했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과 같은 물질적 풍요와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젊은이들은 분단된 한반도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로 나갑니다. 21세기의 문명적 기준과 국제적 규범에 자신의 삶과 우리의 문화를 비추어봅니다. 민족적 정체성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국민들이 피땀 흘려 이룩해낸, 이 엄청난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성취 앞에서 무한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나라를 명실상부한 일류 선진국가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낍니다. 한반도를 전쟁의 위험에서 완전히 해방시킴으로써 우리의 민족사에 평화와 통일, 번영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무거운 사명감을 느낍니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비전은 무엇인가? 저는 자신있게 대답합니다. 저의 비전은 우리 헌법이 규정한 가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1987년 여야합의로 개정한 현행헌법을 통해서, 그리고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거치면서, 큰 틀의 국가적 비전에 이미 합의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것은 인권과 민주주의, 시장경제, 그리고 민족의 화해와 평화적 통일입니다. 저는 어떤 당의 어떤 대통령후보도 이것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시장경제는 개방된 국민경제, 고도분업사회와 조화될 수 있는 유일한 경제적 기본질서입니다. 시장경제를 제대로 발전시키지 않고서는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없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저는 국가 권력이 자의적으로 개입하는 관치시장을 배격합니다. 동시에 경쟁이 없는 독과점시장, 불공정 경쟁이 지배하는 무질서 시장, 부정확한 정보와 조작된 정보가 판치는 불투명한 시장도 배격합니다. 자율성, 공정성, 그리고 투명성이 보장되는 자유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경제적 효율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에게는 국민이 합의한 가치와 비전이 있습니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적절하고 효과적인 정책수단을 선택해야 합니다. 정치인들은 이 지점에서 서로 견해를 달리합니다. 저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사이에는 적지 않은 정책적 차이가 있습니다.

정책의 차이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정치지도자는 구체적인 정책도 있어야 하지만, 시대의 요청을 직시하는 역사적 안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을 실현하려면 굳건한 신념과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때로는 비난을 감수하고 자기를 희생하면서 현실의 벽에 부딪쳐야 합니다. 저는 구체적인 정책에서도 이회창 후보와 차이가 있습니다. 역사를 보는 안목, 신념과 용기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른 정치인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분열의 문화를 극복하고 불신의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이것이 시대와 역사의 요청입니다. 해방 직후 우리 민족은 좌우의 분열 때문에 통일된 자주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했습니다.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쟁을 겪었습니다. 7000만 겨레가 지금도 전쟁의 위협 아래서 살고 있습니다.

1987년에는 민주세력이 분열함으로써 군부독재를 합법적으로 연장시켜 주었습니다. 우리 정치 전체가 지역분열 구도에 휘말려 들어갔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두 지도자는 결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깊어진 지역분열에 발목이 잡혔습니다. 개혁을 제대로 힘있게 추진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역분열을 극복하지 않으면 정치개혁도 할 수 없습니다. 국민통합 없이는 경제발전도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지역분열과 대립을 조장하는 정치인이 아직도 있습니다. 이런 정치인은 21세기 한국의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이것은 저의 확고한 소신입니다.

노사대립도 반드시 극복해야 할 사회적 분열입니다. 선진국 치고 노사화합이 잘 되지 않는 나라가 없습니다. 산업사회에는 노사의 이해갈등과 충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관용으로 대하면 분쟁으로 인한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노사는 서로를 불신합니다. 사용자는 노동운동 자체를 적대시합니다. 노동자는 오랜 기간 탄압받은 경험 때문에 매우 전투적입니다. 그래서 노사가 실용적으로 타협하는 윈윈게임을 하지 못합니다.

이 시대는 우리 사회 내부의 분열과 불신을 극복할 수 있는 정치 지도자를 요구합니다. 저는 정치를 시작한 이후 15년 동안 일관되게 지역분열 정치에 맞서 싸웠습니다. 원칙을 지키기 위해 여러 차례 정치생명을 걸었습니다. 노사화합의 정치적 제도적 기반을 만들기 위해 온갖 비난과 험담을 무릅쓰고 분쟁의 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옳지 않은 대세는 따르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바람이 일어나 제가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된 것은 국민들께서 저를 믿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분열과 불신의 문화를 종식하고 진정한 통합과 개혁의 시대를 열어나가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저는 국민의 뜻을 결코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반드시, 지역구도의 정쟁을 정책구도의 정치로 바꾸어내겠습니다. 지역분열 때문에 흩어진 개혁세력을 하나로 모으겠습니다. 노사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타협하는 풍토를 만들겠습니다. 통합된 국민의 힘으로 경쟁력 있는 국민경선제를 만들겠습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권력층의 비뚤어진 특권의식과 반칙문화를 확실하게 끊어내겠습니다. 어두운 권력문화를 청산하겠습니다. 사정기관이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 구실을 하도록 만들겠습니다. 대통령의 가족, 친인척, 측근, 고위공직자를 불문하고,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면 예외 없이 법의 심판을 받도록 만들겠습니다.

남북의 신뢰기반을 확실하게 구축함으로써 한반도의 전쟁위험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고 전면적인 교류와 협력의 문을 열겠습니다. 대한민국을 민주주의와 인권선진국으로 만들겠습니다. 높은 곳에 군림하는 권력자가 아니라 국민들의 마음 가까이 있는 겸손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귀한 시간을 마련해주신 언론인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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