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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5월 10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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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합리적 사유의 영역을 넘는 이야기다. 사실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신화 읽기란 그 속에서 인간 삶의 근원을 찾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판도라의 상자’는 신화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네 삶 여기저기에 널려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뚜껑 열린 상자만 봐도 그렇다. 그 이름을 일단 ‘최규선의 상자’라고 하자.
▼천박한 권력에 떨어진 재앙▼
나이 마흔둘의 작달막한 사내, 결코 범상하다 할 수 없는 처세술과 재간 그리고 제어할 수 없는 욕망으로 똘똘 뭉친 듯한 한 사내가 어느 날 제 욕망의 원천인 상자의 뚜껑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탐욕과 어리석음과 성냄,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인간 마음의 3독(毒)’이 맹렬하게 고개를 내밀었다. ‘최규선 녹음테이프’의 한 대목이다.
“잘 들으세요. 이제 검찰의 소환이 임박해 가는데요, 내가 이제까지 5년을 기다리면서 김박(김홍걸)도 알다시피 정치적 재기 그 하나만을 위해서 모든 걸 희생하고 감내하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내가 홍걸씨를 끌어안고 어떻게 해서든지 다 보호해줄 테니까요. 그 대신 아버지한테 말씀하십시오. 나를 파렴치범으로 몰려고 한다거나, 재기를 막는 어떤 방법이 시도된다면 나는 다 불어버립니다. 나는 죽을 각오가 돼 있어요. 이 말 명심하십시오.”
그는 이 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비서관이 되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DJ가 당선자였을 때 “자네는 서열이 틀려졌네. 권력내 위치가 틀려져부러. 자네는 내 밑에서 커야 하네”라고 했을 정도였다니 그 이상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결국 청와대 진입에 실패했다. 그렇기로서니 모든 걸 희생하고 감내하고 5년을 기다리면서까지 꾀해야 할 ‘정치적 재기’라니? 탐욕 아닌가. 홍걸씨를 끌어안고 어떡하든 보호해준다? 어리석음 아닌가. 다 불어버립니다. 죽을 각오가 돼 있어요? 파멸적인 성냄이다.
그러나 ‘최규선의 상자’가 쏟아낸 것은 그 자신의 3독만은 아니다. 진정한 재앙은 천박하고 위선적인 권력에 떨어졌다. 이제 권력은 그 어떤 권위도 추스르기 어렵게 됐다. 상자 속에 남은 ‘헛된 희망’이라?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김응룡(프로야구 감독) 버전’대로라면 이제 정말 ‘홍업이도 가고 홍걸이도 가고’ 했으면 좋겠다. 김 감독이야 해태타이거즈 시절 ‘동렬(선동렬)이도 가고 종범(이종범)이도 가고’ 해서 걱정이 태산 같았겠지만 지금 나라 형편은 ‘홍업이도 안 가고 홍걸이도 안 가서는’ 도무지 꼴이 아니게 돼있다. ‘홍업이 홍걸이’ 얘기는 지긋지긋하다. 무슨 무슨 게이트 소리도 신물이 난다. 성공적인 월드컵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국민 건강을 위해서라도 그만 사라져줘야 한다. 종교계 지도자들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광고를 내고 정쟁(政爭) 중단을 호소하는 데에도 이런 국민의 넌덜머리나는 심사가 깔려 있을 터이다.
문제는 어물어물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시간을 끌어서도 안 되지만 정쟁 중단을 빌미로 적당히 끝내려 해서는 더욱 안 될 노릇이다. 그러려고 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DJ에게 남은 ‘국정 전념’의 최우선 순위는 아들들과 권력 내부의 비리를 당신 손으로 털어내는 것이다. 야속하게 들리겠지만 이제는 제발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식의 미적지근한 말씀은 거두시기 바란다.
▼´헛된 희망´을 새 희망으로▼
어쨌든 DJ는 한 시대의 지도자다. 그에 대한 남다른 기대가 이제 비록 참담하게 무너졌다지만 오랜 세월 민주화의 이름하에 그를 지지하고 그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 대한 마지막 보답으로라도 한 시대의 끝맺음을 깔끔하게 해야 한다. 상자 속에 남은 ‘헛된 희망’이 새로운 희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마지막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그 자체로 DJ는 나름의 시대적 의무를 하는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하지만 신화 또한 인간이 만드는 것이라면 희망도 다시 만들 수 있다. 이회창 노무현씨가 할 일도 그게 아니겠는가.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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