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 갈수록 확산…與경선 중대 기로에

  • 입력 2002년 3월 24일 18시 26분


《중반에 접어든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인제(李仁濟) 후보가 제기한 ‘음모론’이 최대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이 후보는 24일 강원지역 경선의 정견발표에선 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아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였으나, 한나라당이 음모론 공방전에 뛰어들어 상황은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특히 음모론에는 ‘김심(金心·김대중 대통령의 의중)’ 작용설은 물론 청와대 실세 개입설, 정계개편론 등 민감한 사안이 종횡으로 얽혀 있어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측도 아직은 ‘심증(心證)’만 얘기하고 있을 뿐이다. 음모론 공방의 주요 쟁점을 점검해 본다.》▽이 후보측 주장〓광주 경선(16일) 코밑인 14일, SBS와 문화일보가 ‘노무현(盧武鉉) 후보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가상대결에서 노 후보가 1.1% 차로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한 것은 ‘노풍(盧風)’을 유도하기 위한 의도적 보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MBC와 KBS가 SBS에 뒤이어 며칠 간격으로 잇따라 비슷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배경에 대해서도 이 후보측은 “전례 없는 일”이라며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 후보는 충남 경선 정견발표에서 “돌풍의 불길이 꺼지지 않도록 수많은 매체들이 쉬지 않고 기름을 붓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당 언론사 반박〓문화일보측은 23일 기사를 통해 “SBS와 공동으로 TN소프레스에 의뢰해 매월 정기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있고, 3월14일 조사도 그 일환이었다”며 “이 후보측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문화일보측은 또 “이회창 총재 빌라 파문을 물은 뒤 대선 후보의 지지율을 묻는 방식으로 문항 순서 조작을 했다”는 이 후보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이 총재와 노 후보의 양자대결은 맨 처음 질문이었고, 이 총재 빌라 파문은 맨 마지막 질문이었다”고 설명했다.

TN소프레스측도 이 후보측에 사과광고를 요구했다.

▽이 후보측 주장〓유종근(柳鍾根) 전북지사가 구속되기 직전 대통령 핵심 측근들이 “특정 후보를 밀기 위해 사퇴를 요구했다”며 외압설을 제기했고, 그의 예고대로 한화갑(韓和甲) 후보가 사퇴한 점에 비추어 의도된 시나리오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후보의 한 핵심 측근은 “한화갑 후보가 3위인데 왜 사퇴했겠느냐. 또 한 후보를 지지했던 지구당위원장 K씨, J씨 등이 광주 경선 전날 노 후보 지지로 갑자기 돌아선 것도 미심쩍다”며 배후설을 제기하고 있다.

▽당사자들 반응〓유 지사는 현재 검찰에 구속돼 있는 상태. 하지만 유 지사가 음모론을 제기할 당시만 해도 유 지사가 언급한 ‘밀어주기’의 대상은 이인제 후보라는 인식이 당내에서는 지배적이었다.

한화갑(韓和甲) 상임고문도“나의 사퇴는 나 스스로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 음모론이 적용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이 후보측 주장〓한 측근은 “3월초 박지원(朴智元) 대통령정책특보가 유지사의 서울 여의도 한양아파트 자택을 찾아가 ‘사퇴하지 않으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했으나 유 지사가 이를 거부하는 바람에 구속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 후보는 KBS 대전방송총국 토론회에서 노 후보에게 “박지원 특보를 2월19일과 27일 만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박 특보 반박〓박 특보는 24일 “유 지사가 내가 사는 한양아파트 같은 동으로 이사왔다는 소식을 들었고, 퇴근길에 집 앞에 유 지사 차가 있는 것을 보고 우연히 들른 적이 있을 뿐”이라며 “당시 부인과 자녀들, 비서들도 한 자리에 있었는데 무슨 사퇴압력이냐”고 일축했다. 박 특보는 또 노무현 후보에 대해서도 “만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노 후보도 역시 박 특보와의 접촉을 부인했다. 임동원(林東源)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도 “논평할 가치조차 없는 얘기”라고 쐐기를 박았다. 김한길 전 장관도 “말도 안된다”고 일축했다.

▽이 후보측 주장〓광주 경선에 앞서 김 전 의원이 길거리에서 기습 체포됐고 경선대책본부 의장인 김기재(金杞載) 의원 소환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는 증거라고 지적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수사가 진행돼온 사안인 데다 김 전 의원이 3선 경력의 여당 지구당위원장인 점에 비추어 백주에 전격 체포한 것은 이 후보에게 결정적인 상처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검찰측 반박〓검찰 관계자는 “부산지검장이나 부산지검 특수부장은 모두 PK 출신 인사”라며 “김 전 의원의 구속에 음모론을 접목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김 전 의원 사건은 97년 대선 때부터 문제가 됐으나 사건의 핵심관계자인 동방주택 이영복 사장이 검거되지 않아 수사가 사실상 중단상태에 있었다”며 “이씨가 지난해 12월 검거돼 수사가 급진전됐고, 김 전 의원이 구속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도 아들과 아태재단에 대한 수사도 막지 못하는 판인데…”라고 말했다.

▽이 후보측 주장〓김윤수(金允秀) 공보특보는 “노 후보가 정계개편을 자주 언급하는 데는 노 후보의 돌풍을 부추기는 세력이 작용하고 있다”며 배후세력설을 제기하고 있다. 이 후보측의 박범진(朴範珍) 전 의원도 “노 후보의 정계개편론은 결국 당을 깨자는 것인데도, 당 지도부가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고 있다. 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 후보측 반박〓유종필(柳鍾珌) 공보특보는 “노 후보가 본선후보가 될 경우 자연스럽게 정계개편이 이뤄질 것이라고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 그 때는 아무소리 없다가 노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자 음모라고 주장한다”고 반박했다.

실제 노 후보는 지난해 11월25일 광주에서 “지금 한나라당에는 이회창씨의 수구적인 정당운영에 염증을 느끼는 의원들이 많다”며 “내가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면 이분들에게 정책과 이념을 중심으로 통합세력, 민주세력, 개혁세력이 하나가 되는 정계개편을 주장하겠다”고 밝혔다.

노 후보는 또 지난해 12월10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후원회에서도 “대선 후보가 되면 이념과 정책에 따른 정계개편을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이인제 후보측의 음모론 주장 근거와 반박
이인제 후보측 주장관련자들 해명
광주 경선 직전, SBS와 문화일보 공동여론조사는 노무현 돌풍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정기 여론조사로, 특정 후보 지지 유도한 적 없다(문화일보 SBS, TN소프레스)
박지원 대통령정책특보가 유종근 전북지사 만나 후보 사퇴를 요구했다 같은 아파트로 이사와 우연히 만난 적 있지만, 그런 얘기 없었다(박지원 특보)
박지원 특보가 2월에 두 차례 노무현 후보를 만났다는 의혹 있다 전혀 만난 적 없다(노무현 후보, 박지원 특보)
김운환 전 의원 기습 체포한 것은 의도가 있다.사건 핵심인물인 이영복씨가 지난해 12월 검거돼 수사가 급진전됐다(검찰 관계자)
한화갑 후보 사퇴도 외압 의혹 있다.내 사퇴는 내가 결정한 것으로, 음모론을 적용시킬 수 없다(한화갑 의원)
노무현 후보 정계개편 구상에 배후세력 있다.정계개편론은 지난 해부터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 지금에 와서 음모라고 공격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노무현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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