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추방뒤 새 여권갖고 입국…당국 劉씨 이틀만에 풀어줘

  • 입력 2002년 2월 14일 23시 31분


아내를 찾기 위해 사지(死地)와 다름없는 북한땅에 다시 들어갔다가 20개월 만에 탈출에 성공한 유태준(劉泰俊)씨의 행적은 한마디로 미스터리 투성이다. 특히 그가 평양 국가안전보위부 감옥에서 탈출한 것이 아니라 북한 노동자로 일하다 탈출했다는 사실이 14일 새롭게 밝혀지면서 그의 재탈북과정과 국내 입국경위에 대한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와 관계당국이 유씨의 진술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고도 24시간이 넘도록 이를 방치한 데 대해 갖가지 억측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뒤늦은 해명 소동〓국가정보원 기무사 경찰 등 유씨를 합동신문한 관계기관 측은 14일 오후 4시경에야 통일부 측에 보위부 감옥 탈출이 사실이 아니라고 통보했다. 유씨는 13일 기자회견에서 평양 보위부 감옥을 탈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 정치범 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이 “24시간 감시체제인 보위부 감옥 탈출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증언하는 등 의혹이 거세지자 관계기관은 뒤늦게 유씨의 진술내용을 공개했다.

유씨는 또 기자회견에서 “아내의 얼굴은 작년 8월 북한에서 가진 두번째 회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평양 문수초대소에서 체류하던 작년 5월 중순부터 8월14일까지 여러 차례 만났다고 관계기관에 진술했다는 것이다. 유씨는 이와 관련, 14일 오후 관계기관 측에 “(북한 탈출과정을) 과시하기 위해 기자회견 과정에서 보위부를 탈출했다고 말했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유씨는 작년 1월 32년형을 선고받은 뒤 같은 해 5월 석방됐고 같은 해 11월 탈출을 시작해 양강도 혜산에서 중국으로 탈출했다”며 “감옥탈출 부분을 제외한 북한 체류시기 등은 유씨의 진술내용과 대부분 일치한다”고 말했다.

▽석연치 않은 국내입국 과정〓관계기관 측은 14일 통일부 측에 “유씨가 여행증명서를 갖고 국내에 들어왔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유씨는 기자회견에서 “중국에서 우리 공관과 접촉한 적이 없다. 정부의 도움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더욱 의혹을 사는 대목은 관계기관의 통보와 달리 그가 입국시 여행증명서가 아닌 새로 발급된 여권을 갖고 들어왔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국가정보원은 14일 보도자료를 내고 “중국 베이징(北京) 주재 우리 대사관은 작년 12월3일 유씨를 체포한 중국 지린(吉林)성 공안청으로부터 한국인 여부에 대한 신원확인 요청을 받고 1월17일 유씨가 한국인임을 통보했다”며 “우리 대사관은 2월5일 유태준의 임시여행증명서를 발급한 뒤 지린성 공안청에 송부해 유씨가 입국하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정원 관계자는 “유씨가 국내로 들어오면 북한에서의 행적을 충분히 조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 중국에서는 별도의 접촉을 하지 않았다”며 “우리 정부기관이 유씨의 재입국 이전에 중국에서 조사한 사실은 없다”고 말했다.

▽허술한 정부 조사와 탈북자 관리〓정부는 유씨에게 대공용의점이 없기 때문에 남북교류협력법상 ‘북한주민접촉 승인’과 ‘방북승인’ 등을 받지 않은 혐의로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 내에서 기자회견을 두차례나 하고, 국가안전보위부 감옥까지 들어갔다 나온 인물을 이틀 만에 자유롭게 풀어준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보도자료에서 “관계기관이 9일 합동으로 유씨의 밀입북경위, 북한 체류시 행적, 재탈출 경위 등에 대해 신문을 마친 뒤 경찰에서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해 유씨의 신병을 10일 경찰에 인계했다”며 “경찰은 11일 검찰의 지휘를 받아 유씨를 석방한 뒤 국가보안법 및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 위법사실에 대해서는 불구속상태에서 계속 보강 수사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정원과 통일부로 이원화돼 있는 탈북자 관리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유씨의 경우 국정원 측이 입국한지 나흘이 지난 13일까지도 통일부에 입국사실을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부 유관부처간 협조체제를 새로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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