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회유설 사실무근 북핵 논증위해선 미국갈 필요없어"

  • 입력 2002년 1월 17일 18시 21분


황장엽(黃長燁·사진) 전 북한노동당 비서의 방미(訪美) 문제가 또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일부 언론이 17일 황씨와 함께 망명한 김덕홍(金德弘)씨의 말을 인용해 ‘황씨가 국가정보원의 회유로 인해 미국 의회의 방미초청을 거절했다’는 식으로 보도한 게 발단이 됐다.

황씨는 이날 국정원을 통해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14일 미 의회 전문위원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북한에 핵무기가 있는지, 화학무기가 있는지 따위의 문제만 물어보고 끝마치려 했다”며 “내가 미국을 방문해 발표하려고 준비했던 원고는 이미 책으로 나왔기 때문에, 그런 문제를 다시 되풀이하는 것이라면 미국까지 갈 필요가 없다”고 해명했다.

그동안 황씨의 방미가 성사되지 않았던 표면적인 이유는 신변안전 문제였다. 미국 내 보수파는 황씨를 통해 북한의 핵 및 생화학 무기 위협론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데 비해 황씨는 북한 체제의 붕괴에 일차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어, 서로 이해가 꼭 일치하는 것도 아니었다.

또한 황씨가 미 의회에서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을 비난할 경우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정부가 그의 방미를 허가하지 않는다는 의혹도 일각에서 제기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씨가 방미 의사를 접은 것은 아니다. 보도자료에서 그는 여전히 “나는 평화적 방법으로 북한 독재정권을 붕괴시키는 방향으로 투쟁하려고 한다”며 “이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벗들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미국을 방문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구체적으로 방문초청을 받는다면 방문의 구체적인 목적과 일정, 건강조건 등을 검토하고 시기와 일정을 답변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황씨는 자신이 추진 중인 철학연구소 건립지원을 내세워 국정원 측이 방미 취소를 회유했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국정원도 같은 취지의 보도자료를 냈다.

이에 김씨는 “형님(황장엽)과 내가 ‘인간중심철학 개인연구소’를 만드는 문제를 놓고 의견차를 나타내자, 국정원이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다”며 “형님의 연구소 건설에 대한 집착을 이용해 국정원이 (방미 취소) 배후공작을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작년 말 탈북자동지회 이사회에서 회장 재선에 실패한 뒤 회장직을 유지하려는 자신을 황씨가 지지해주지 않은데 대해 줄곧 섭섭한 감정을 표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황씨는 보도자료에서 “김덕홍과의 관계가 나빠진데 대해 가슴아프게 생각한다”며 두 사람이 불편한 관계임을 인정했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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