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총재 신년 인터뷰 "내각제만이 부패-정치불안 없애"

  • 입력 2002년 1월 4일 18시 30분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는 4일 오전 동아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첫 질문도 하기 전에 “초하루 저녁엔 한숨도 못 잤어요. 내각제 구현을 위해 마지막까지 싸우겠다는 결심을 굳히느라 그랬죠”라며 내각제 얘기를 꺼냈다. 김 총재는 2시간여에 걸친 회견 도중 “만성적 정치불안과 부패의 근원은 대통령제이다” 또는 “과욕이 만병의 근원이다”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회견은 부산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문답 요지.

-6일 귀경하신다는데 신년 구상은 가다듬었습니까.

“대한민국의 좌표를 제대로 인식하는 정치인이라면 이제 대통령제의 폐단을 깨닫고, 고쳐야 할 때가 됐다는 인식을 공유할 수 있을 텐데…. 그런 것을 초하룻날 밤에 쭉 생각해봤어요.”

-대선이 1년도 남지 않았는데 내각제 개헌의 공론화가 가능하겠습니까.

“난 이게 올해 금방 실현되리라 생각하고 떠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구체적 실현을 위해서는 설득과 대화와 설명의 시간이 좀 필요해요. 올해는 하나의 전환을 이루는 해로 생각하고자 해요. 개헌론은 더 이상 금기가 아니에요. 정치하는 사람들이 인식을 갖고 공유하는 면이 깊어지고 넓어지면 행동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또 2004년 총선 이전 개헌을 말씀하셨는데, 새 정부 출범 후 1년여 만에 개헌이 가능하겠습니까. 좀 더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좋죠. 그런데 내가 여러 차례 속았어요. 대통령제라는 것이 사람까지도 변화시키고 우습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임기 중에 뭘 하겠다는 약속을 믿을 수 없어요.”

-다른 대선주자 중에 그렇게 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도울 거요. 나는 후진들에게 길을 열어놓고 조용히 사라지겠다는 사람입니다.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제도를 만들어 놓고 정치를 하라는 얘기죠.”

-또 속을 수도 있지 않나요.

“모르겠어요. 지키겠다고 국민 앞에 그렇게 굳게 약속을 하고도 속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국민을 속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내가 ‘잠들기 전에 몇 발짝 더 가야겠다’며 다져온 생각도 이것입니다. 마땅한 사람이 없으면 내가 나설 겁니다. 당락에는 관심이 없어요.”

-총재님의 향후 정치적 역할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요.

“나는 그동안 극단 사이의 완충 역할을 해왔습니다.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때는 북방외교를 성공시키기 위해 합당했고,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만들 때는 ‘이번엔 그 분이 순리다’ 해서 도왔고,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만들 때는 ‘정권교체가 필요하다’고 해서 도와 호남 사람들의 깊은 한을 어느 정도 풀어줬어요. 국가적 차원에서 협력해 온 것입니다. 지도자는 자기희생이 있더라도 감수할 줄 알아야 해요. 요즘은 제도적 모순을 고치기 위해 희생양이 되겠다는 사람이 안 보여 슬픈 마음입니다.”

-내각제는 불안정하다는 생각을 가진 국민도 많은데요.

“내각제라도 잘하면 8년도 하고 10년도 할 수 있어요. 또 자주 바뀐다는 게 나쁜 점도 있지만 좋은 점도 있습니다. 시원찮은 정권 같으면 국민들이 잘 바뀌었다고 환영하고, 정권은 안 바뀌려 조심하게 됩니다. 또 정권을 바꿔보면서 집권 경험을 공유하다 보면 서로 이해하게 돼 극단적 싸움이 없어져요.”

-개헌론이 신당 창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까.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가변적이에요. 그런 사람들을 놓고 내가 어떻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가변성은 있을지 모르지만 이젠 누군가 앞장서 떠들어야 할 때입니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 정치권의 지각변동’ 가능성을 언급해왔지 않습니까.

“여기저기서 싹이 좀 움트다가도 곧 밟히거나 스스로 움츠러들곤 하데요. 사생관이 확실한 사람 같으면 뭔가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면서 자기의 정치활로를 열어나갈 텐데…. 그 문제는 좀 더 두고봅시다. 뭐가 나오는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와 민주당 이인제(李仁濟) 상임고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 나름대로 보는 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은 욕심들이 앞서는 것밖에 보이질 않아요. 좀 더 대승적인 자세와 생각을 갖고 나라 일을 생각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은 내가 누가 어떻다고 평하지 않겠으나 하반기쯤 되면 할지 모릅니다.”

-최근 이 총재에겐 좀 화를 내면서, 이 고문에겐 덕담을 한 특별한 뜻이 있습니까.

“나도 (이총재에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차원에서 좀 뭐라 했지만, 그게 (어떤 선택을 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쪽에서 공을 던지니까 받아넘긴 차원입니다. 이젠 공을 던져 오면 쇠뭉치를 던질 거예요. 덕담은 내가 속에 아무것도 감춘 게 없기에 할 수 있는 겁니다. 남 얘기할 때는 좋게 얘기하는 게 좋지 않습니까. 다만 인생 70을 넘겨 돌이켜보면서 충고하고 싶은 말은 ‘과욕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과욕이 악마예요.”

-이 총재에겐 정초에 술을 선물했던데요.

“거기서 난을 보내왔기에, 이 총재가 술을 좀 좋아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발렌타인을 좀 보냈어요.”

-어제 이 총재와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만났는데….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 총재가) 아주 자신에게 할 수 없는 일을 한 것처럼 원망스러운 맘을 갖고 계시더군요. 내가 옆에서 보기에도 그게 무리한 감은 아닌 것 같습디다. 그런 분을 만나서 지난날을 사과드리고 새로운 생각을 교환하면서 사이좋게 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 아닙니까.”

-한나라당은 정치보복금지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 것 아무리 해봐야 일은 인간이 하는 거요. 민주주의 떠드는 사람치고 민주주의 제대로 하는 사람 없습디다. 언제 법이 없어서 못했습니까. 법 만드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법으로 만드는 것이 화근입니다. 어느 나라가 그런 법을 만듭니까. 먼저 사람이 돼야 한단 말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97년 DJP 합의사항인 내각제 이행을 요구할 생각은 없나요.

“글쎄, 간단하게 (약속을) 어겼는데 간단히 돌아설 수 있을까요? 이제 집권당 총재직까지 내놓고 당적까지 버릴 가능성이 있다던데, 그래 갖고는 일 못할 거요. 또 이젠 (김 대통령이)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임기가 1년 남은 김 대통령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대통령이 누굴 갖다놓고 쓰건 그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에요. 레임덕을 자초하지 말고 임기를 잘 끝내주길 바라요. 나라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면우리 당은 협력할 것입니다.”

-‘진승현 게이트’에 대한 한나라당의 특별검사제 실시 요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왜 파헤치지 못합니까. 누가 출국금지 전날 해외에 나갔다고 하는데, 이해가 안 가는 일입니다. 철저히 파헤쳐야 합니다. 방법과는 관계가 없어요. 국회에서 합의를 보면 (특검제도) 해야죠. 이런 부패도 대통령제의 절대권력 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걸 피하자는데 왜 자꾸 안 고치는지…. 개헌논의를 공론화해야 합니다.”

김 총재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페어플레이도 인화(人和)가 없이는 구두선(口頭禪)에 그치는 것이다”며 ‘페어플레이도 불여인화(不如人和)’라는 글귀를 써주었다.

정리〓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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