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교원정년 딜레마]“巨野 데뷔무대 잘못 골랐다”

  • 입력 2001년 11월 25일 18시 19분


“칼자루를 쥐긴 쥐었는데, 엉뚱한 곳에 휘둘렀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교원 정년 연장 법안의 강행처리를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거야(巨野)의 위력을 발휘하는 첫 데뷔작으로 이번 사안을 밀어붙인 것은 아무래도 전략적 오판(誤判)이었다는 얘기다.

실제 한나라당 내에서는 이번 사안을 두고 “이회창(李會昌) 총재 등 당지도부가 아직도 야당에게 ‘숫자의 힘’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야당의 힘이 무엇보다 ‘국민적 공감’을 얻는 데 있는 만큼 숫자의 힘을 믿고 밀어붙여 ‘거야의 횡포’란 비난을 살 경우에는 ‘거여(巨與)의 전횡’ 못지않은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상식을 잊어버렸다는 지적이다.

당내 일각에서 “거대야당으로서 가장 우선적으로 손댔어야 할 사안은 무엇보다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고 정부 여당도 내놓고 반대하지 못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반면 교원 정년 연장 법안은 아직도 다수의 학부모가 반발하는 등 이른바 이해집단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 그런데도 한나라당이 교원 정년 연장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것은 한번 결정하면 쉽게 논리적 ‘U턴’을 하지 못하는 이 총재의 리더십 스타일과도 직결돼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 이 총재는 작년 정기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정부의 교원 정년 단축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교육공무원법 개정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것이 일부 참모진에서 ‘강행처리는 무리’란 건의를 했음에도 지금까지 당론을 바꾸지 못했던 주된 원인이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특히 일각에서는 한나라당 지도부가 내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교육계 내 일부 단체의 지지를 얻어내는 정략적 이해에만 연연했기 때문이라는, ‘큰 그림’을 못보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 정책관계자는 “정년 연장안을 지지하는 수는 2만여명에 불과한데 거기에 연연해 여론의 대세를 외면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정훈기자>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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