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유입 안기부 자금 1157억원 출처 아리송

  • 입력 2001년 1월 7일 17시 57분


‘안기부 돈 선거자금 유입’ 사건 수사가 진행되면서 안기부가 정치권에 뿌린 1157억원의 사용처에 못지 않게 그 출처에 대해서도 의문점이 많다.

국가정보원의 현직 중견간부는 “실무 부서에서는 단돈 만원도 쉽게 쓸 수 없다”며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갔는지, 또 그 돈이 빠져나간 상태에서 어떻게 살림이 이뤄졌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검찰은 문제의 돈이 대부분 안기부에 배정된 국가예산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계좌추적 결과 대부분 안기부가 자체 발행한 수표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안기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예산 항목에서 얼마를 빼돌려 그 자금을 마련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전했다. 앞으로 밝혀야 할 중요한 수사과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주범’인 김기섭(金己燮)전 안기부 운영차장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함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97년 안기부 감사과 직원으로 내부감사에 참여했던 전직 안기부 직원이 이미 3년 전에 안기부 예산 1000여억원이 증발했다고 밝힌 사실이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전 안기부 감사관실 사무관 정인영씨(미국 거주)는 신동아 98년 4월호 인터뷰에서 안기부의 96년도 내부결산자료를 폭로하면서 “96년 안기부 예산 1000여억원이 실체를 알 수 없는 ‘정책사업비’로 불법전용됐으며 이 돈이 정치자금으로 흘러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정씨의 주장은 당시에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으나 이번 사건과 대비해보면 놀랄 만큼 정확한 정보였다고 할 수 있다.

정씨가 내부결산보고서를 통해 밝힌 안기부의 96년 총 예산은 5596억8700만원. 이 가운데 3031억원이 직원급여와 수당 등으로 쓰였고 1489억원이 사업비로 집행됐다. 나머지 1000여억원은 ‘지출관’이 정책사업비와 여론조사비, 양우기금(직원 퇴직금 보조금) 등의 항목으로 집행한 것으로 돼 있다.

문제는 예산회계법상 지출관은 국고대체수표를 발행하는 일을 할 뿐 예산집행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돈은 정체불명의 돈으로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이다. 정씨는 96년에 제15대 총선이 있었던 점에 비춰 이 돈이 선거자금으로 유용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정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안기부는 예산결산보고서까지 조작해 국고를 빼돌린 셈이 된다. 이와 관련, 검찰 관계자는 “정씨 주장은 시점에서 수사상황과 다소 어긋나지만 큰 줄거리는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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