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회담 논의내용 청와대-한나라 엇갈린 주장

  • 입력 2001년 1월 6일 01시 23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영수회담 결과에 대해 한나라당측이 4일 ‘결렬’ 선언과 함께 “대통령이 뻔뻔한 줄도 모른다”고 격하게 비난하자, 청와대측은 5일 “이총재가 국가원수와의 회담내용을 왜곡 과장한 저의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며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한나라당측은 영수회담에서 이총재가 “차를 갖고 들어오던 여직원이 놀랄 정도로 고함을 쳤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회담장을 나설 때 화가 나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그냥 내려왔다”고 밝혔지만, 실제상황은 달랐다는 게 박준영(朴晙瑩)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의 설명이다.

박수석은 “청와대 본관에는 차 심부름하는 여직원이 없다. 본관 엘리베이터도 대통령 전용으로 김대통령이 특별히 노약자 등에게 타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이총재는 회담장에 올 때도 계단으로 걸어 올라왔고, 갈 때도 걸어 내려갔다”고 밝혔다.

그는 또 “어제 회담에서 대통령이 국회 남북관계특위를 거론하자 이총재가 ‘야당은 명단을 제출했으나 여당이 내지 않아 가동이 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나중에 확인해보니 여야 모두가 명단을 제출했다”며 “또 이총재가 금융구조조정이 된 것이 없다고 말한 것도 실상과 전혀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5일 “이총재가 직접 ‘고함을 쳤다’거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은 “이총재가 자기 질문서에 대통령이 한 말을 연필로 적어 이를 보여주며 구술한 만큼 모든 게 다 사실”이라며 “영수회담에서 김대통령이 ‘의원 꿔주기’를 사전에 알았음이 드러나자 청와대측이 엉뚱한 시비를 거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한편 김대통령과 이총재는 그동안 여야 총재 자격으로 모두 일곱 차례 회담을 가졌으나 결과는 매번 신통치 않았다. 정치권 인사들은 그 주된 원인으로 두 사람의 상호 불신을 꼽았다.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은 상태여서 상대가 아무리 약속과 다짐을 해도 믿지 않기 때문에 회담에서의 합의가 깨지는 악순환이 거듭됐다는 지적인 것이다. 실제로 이번 회담을 제외하고는 매번 두 사람이 그럴 듯한 합의 사항을 발표했는데도 곧이어 불거진 돌발 악재(惡材)로 인해 관계가 악화되곤 했다.

한나라당 손학규(孫鶴圭)의원은 이를 ‘대권을 놓고 벌이는 제로 섬 게임의 폐해’라고 설명했다. 김대통령이나 이총재 모두 정권 재창출 또는 대권 쟁취를 목적으로 하고 있어, 서로를 제압하지 않으면 자신이 패배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얘기였다.

<윤승모·송인수기자>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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