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 "국민들 걱정 많은때 출국 마음 무겁다"

  • 입력 2000년 11월 23일 18시 44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23일 ‘동남아국가연합(ASEAN)+한중일’ 정상회담에 참석키 위해 출국하면서 “국민의 걱정이 많은 때에 출발하게 돼 마음이 편치 않다”고 인사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서면으로 배포한 출국인사에서 “유감스러운 국회 파행으로 시급히 추진되어야 할 국정현안들이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어 더더욱 마음이 무겁다”며 이같이 말했다. “경제 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해 내년 봄부터는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게 하고, 이번에 외국 정상들과 만나 더 많은 수출과 투자, 자원 확보를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대통령이 외국을 방문하면서 이렇게 착잡한 인사말을 남긴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치 경제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시점에 외국 순방을 떠나야 하는 안타까운 심경을 표현한 것 아니겠느냐. 이번 순방은 작년부터 일정이 잡혀 출국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다”는 배경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인사말이 전해지자 한나라당 당직자 사이에는 “대통령의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이하다”는 성토가 쏟아져 나왔다.

이날 당3역 간담회에 참석했던 김기배(金杞培)사무총장은 “의약분업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농민문제에다 노조 총파업 등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대통령이 이런 국내 문제부터 풀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목요상(睦堯相)정책위의장도 “산적한 국내 문제는 제쳐놓고 외국만 신경 쓴다”며 김대통령의 잦은 외유를 문제삼았다. 이번 동남아 순방에 앞서 브루나이(13∼17일)를 방문했고, 다음달 10일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을 위해 노르웨이와 스웨덴을 방문하는 등 한달 여 동안 외국을 3번이나 나가는 데 대한 지적이었다.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은 ‘강 건너 불 구경하는 듯한 대통령’이라는 제목의 논평까지 냈다. 그는 “여야가 협력해서 국회를 조속히 정상화시키라니, 대통령은 여야를 뛰어 넘어 제3자적 위치에 있는 초월자란 말이냐”며 “대통령의 이런 무책임한 자세가 정국혼란을 더욱 부추긴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균환(鄭均桓) 민주당 원내총무는 “김 대통령의 언급은 국회파행에 대해 포괄적으로 유감표명을 한 것”이라며 “야당은 불필요한 시비를 걸기보다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국회정상화에 협력하라”고 촉구했다.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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