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상봉 그 이후]"더 많이 더 자주 만나자"

  • 입력 2000년 8월 17일 19시 08분


8·15 이산가족 교환방문이 끝났다. 3박4일의 꿈같은 일정 속에서 이산의 슬픔을 잠시 잊었던 이들은 다시 기약할 수 없는 이별 앞에서 오열했다.

그래도 그들은 나았다. 대다수 다른 이산가족들은 여전히 부모 형제의 생사도 모른 채 눈물을 삼켜야 했다. 이들의 한(恨)을 풀어줄 더 나은 방법은 없는가.

전문가들은 8·15 이산 상봉을 냉전시대의 유산을 청산하는 ‘씻김굿’으로 삼고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 남북 모두가 서둘러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전시적이고 소모적인 일회성 행사에서 벗어나 이산가족들이 언제라도 만날 수 있고 생사를 확인할 수 있도록 상봉과 교류를 정례화, 제도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연구원 이금순(李琴順)연구위원은 “현재의 남북관계 진전상황을 보면 9, 10월에도 이산가족 방문단을 추가 교환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 같다”며 “그러나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은 방문단 교환보다는 면회소 설치 합의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이 9월 개최될 적십자회담에서 면회소 설치문제를 논의하기로 합의한 만큼 이를 실현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여 생사확인과 상봉 정례화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

이연구위원은 또 “이번에 상봉한 사람들도 서신교환과 가족송금 등으로 연락채널을 유지할 수 있어야 상봉의 의미를 이어나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면회소 설치문제가 절실한 것은 남북에 흩어진 이산가족의 규모 때문이다.

남측에 있는 이산 1세대 숫자만 해도 123만명이고 2,3세대까지 합하면 700만명이 훨씬 넘는다.

이번 8·15 상봉을 위해 대한적십자사에 직접적으로 신청을 한 사람만 7만6793명이다.

또 이번 상봉을 계기로 하루 300∼400명이 추가 신청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남북이 매달 100명씩 방문단을 교환한다 하더라도 모든 이산가족이 상봉하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또 이산 1세대의 나이를 생각한다면 지금 시기를 놓칠 경우 영영 상봉의 기회를 잃게 된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 민간단체인 효도회 장승학(張承學)회장은 “앞으로 이산가족 생사확인, 서신교환, 추석 설날 등 명절 성묘를 위한 방문단 교환 등의 수순을 밟아야 한다”며 “가족단위의 재결합부터 이뤄져야 남북 동질성 회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겉보기 행사보다도 면회소를 통한 실질적인 만남이 필요한 이유는 또 있다.

정부가 8·15 상봉행사를 위해 지출한 비용은 북측 방문단 숙소인 워커힐호텔 숙식비 3억5000만원을 포함해 각종 행사비용까지 합치면 20억∼30억원에 이른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

이는 금강산에 면회소가 설치돼 1인당 금강산 관광비용 66만원을 들인다 하더라도 5000명이 가족을 만날 수 있는 액수.

이런 맥락에서 ‘이벤트성 상봉행사’보다는 면회소를 설치해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하고 상봉비용을 전액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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