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꽃파는 처녀' 촬영감독 하경씨 부인 만나려나

  • 입력 2000년 8월 16일 18시 58분


북측 이산가족 상봉단으로 서울에 온 하경씨(74)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북한영화 ‘꽃파는 처녀’를 촬영한 북한 최고의 촬영감독.

26세 때부터 42년간 70편 가량의 영화를 제작하고 8년전 은퇴한 그는 국기훈장 1급, 노력훈장 등을 받았을 정도로 북한에서 촬영에 관한 한 1인자로 꼽힌다.

16일 만난 그는 북한영화의 특징을 ‘인간을 그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특히 수령과 당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초점을 맞춰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

그러나 이번 방문에서 그는 인간적 인연(因緣)의 기구함을 가장 크게 느끼는 사람 중 하나다. 그는 50여년만에 세 아들과 재회의 기쁨을 누렸지만 남몰래 그리워하던 남쪽의 아내 김옥진씨(78)를 여지껏 만나지 못한 것.

서울을 찾은 첫날밤, 휴대전화를 통해 김씨의 목소리를 50여년 만에 다시 듣게 된 하씨는 ‘혹시나 오려나’하는 기대와 설렘 속에 하얗게 밤을 지샜다. 6·25전쟁 때 남편과 헤어진 10년 뒤 세아들을 시집에 맡기고 재혼한 김씨는 “내가 무슨 낯으로 당신을 보겠는가”라며 만남을 거절했다.

하씨가 실망하고 있을 무렵, 사실 아내 김씨는 16일 아침 일찍 용기를 내 북측 방문단 숙소인 워커힐호텔 근처까지 나왔다. 그러나 김씨는 ‘상봉가족 인원이 5명으로 제한돼 명단에 빠져 있다’는 이유로 숙소 출입을 제지당해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하씨와 김씨가 재회할 수 있는 기회는 이제 17일 단 하루 뿐. 반세기 동안 가슴 한구석에서 그리던 두 부부는 과연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훈기자>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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