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 이모저모]서울서…평양서… 50년만의 만남

  • 입력 2000년 8월 15일 23시 44분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은 15일 김포공항 도착 후 숙소인 쉐라톤 워커힐호텔까지 관광버스로 이동하면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서울의 모습에 감탄하곤 했다.

북측 방문단을 태운 1호차 운전사는 “버스를 탈 때는 다소 긴장하는 모습들이었으나 용산을 지날 무렵에는 참 많이 변했다는 소리가 들려 나왔다”고 전했다.

○…북측 방문단이 이날 오후 4시 45분경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에 입장하자 이들을 만나기 위해 온 친지들과 일반시민들은 상봉장인 3층 홀로 향하는 통로에 늘어서 장내가 떠나갈 정도로 큰 박수와 환호로 환영.

그러나 북측 방문단이 상봉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상봉장은 이내 눈물바다로 변해버렸다. 자신의 가족을 찾은 북측 방문단들은 부모 형제들을 부둥켜안고 오열했으며 아버지에게 큰 절을 하는 등 반세기 동안 겪었던 생이별의 아픔을 눈물로 토해냈다.

정선화할머니(94)는 아들 조진용씨(69)가 상봉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그만 실신해버려 응급처치를 받기도 했다.

○…대부분의 남측 이산가족들은 감격적인 상봉 장면을 생생히 간직하기 위해 사진기대신 캠코더를 가져와 상봉 모습을 담느라 분주한 모습.

북한에서 온 형 김덕호씨(73)를 만난 기호씨(65) 가족들은 만난 직후 흥분이 가라앉자 서로 포옹하는 장면을 번갈아 가면서 찍어 주기도.

또 일부 가족들은 상봉장에 못 들어온 가족을 위해 휴대전화로 현장 상황을 일일이 전달해주기도 했다.

○…남북이산가족의 만남을 기리는 대형 걸개그림이 제작을 시작한 지 엿새만에 완성돼 15일 아침 이산가족들의 집단상봉장인 코엑스 켄벤션센터 12번 컨벤션홀에 설치됐다.

폭 60m, 높이 10m 크기인 이 대형 걸개그림은 85년 고향방문단에 속했던 한 모자의 상봉 장면 등을 남북 이산가족 7만9183명의 깨알같은 이름을 컴퓨터그래픽 처리해 완성한 것.

국정홍보처는 85년 당시 동아일보가 특종 보도한 북측 아들 서형석씨(당시 54세)와 남측 어머니 유묘술씨(당시 83세)의 상봉장면 ‘오마니…’ 사진을 제공받아 걸개그림을 만들었다.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 코엑스 컨벤션센터에는 340여명의 외신기자가 모여 열띤 취재 경쟁.

독일의 공영방송 ZDF 기자인 크뢰거 우베는 “양측 국민의 힘으로 정부를 움직여 서로 교류가 가능했던 독일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역순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비교한 뒤 “어쨌든 매우 감동적이고 흥미로운 만남”이었다고 평가.

미국 뉴욕타임스의 스테파니 스트롬은 “타의로 헤어진 가족들이 50년 만에 다시 만나는 인류애 넘치는 장면은 어떤 드라마보다 극적이었다”고 한마디.

▼아바이마을 TV보며 회한▼

○…이날 강원 속초시 청호동 함경도 아바이마을의 노인회관 TV 앞에 모여 앉은 10여명의 실향민들은 이산가족들의 뼈아픈 만남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아바이마을은 국내에서 대표적인 실향민 집단거주지로 실향민 1세대 500여명이 살고 있는 곳.

‘통일이 되면 고향에 가장 빨리 가겠다’며 이곳 바닷가에 정착한 실향민들은 과거 이산가족 상봉 추진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뉴스의 초점이 됐으나 이번 이산가족 재회에는 한 명도 포함되지 못했다.

○…이날 워커힐호텔 현관에서 북측 방문단을 맞은 환영객들 중에는 집단 상봉을 앞두고 미리 얼굴을 확인하러온 남측 이산가족들이 취재기자 대열 가운데 상당수. 이중 북측 이산가족 양한상씨(69)를 만나러 온 동생 한호씨(57)는 “형님을 더 가까이서 보아야겠다”며 이날 남측 이산가족 숙소로 배정된 올림픽파크텔 이외에 워커힐호텔에도 별도로 방 한칸을 예약.○…이날 남측 방북단이 출국하는 김포공항 제2청사 출국장에는 방북하는 이산가족의 친지들 수백명이 몰려나와 장사진. ‘큰아버님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공항에 나왔던 북측 방문단 심종만씨(68)의 남쪽 동생 가족들은 입국장을 빠져나온 심씨가 피켓을 확인하고 손을 흔들자 일제히 “아버님”이라고 부르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버스 근처까지 따라나간 심씨 가족들은 버스가 공항을 빠져나갈 때까지 눈짓으로나마 감격의 첫 인사를 나누는 모습.

○…이날 인민문화궁전에서 있은 북한적십자회 초청만찬 메뉴는 고기종합보쌈, 생선묵, 감자무침, 김치, 쉬움떡, 메추리알국, 볶음밥, 닭강냉이즙, 칠색송어구이, 버섯완자볶음, 수박, 과줄, 인삼차 등.

식사중엔 ‘반갑습니다’‘아리랑’ ‘고향의 봄’등 귀에 익은 노래들이 연주됐다.

○…고려항공 승무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100명의 남측 방문단 중 가장 먼저 평양 땅을 밟은 김금자씨(69·여)는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기쁨에 겨운 표정이 역력.

일부 이산가족은 김일성주석의 대형초상화가 걸려있는 순안공항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서있기도.

숙소인 고려호텔로 가는 동안에는 지난 6월 남북정상회담 때 60만 인파가 몰렸던 것과 달리 일부 행인들 만이 방문단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며 환영.

○…고려항공 특별기가 김포공항을 이륙해 예정보다 5분정도 빠른 오후 1시54분경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남측 방문단은 설렘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

이들은 비행기에 탑승한 뒤 여승무원들의 안내에 따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고 쓰인 북한 입국신고서와 세관신고서를 작성하며 방북을 다시 한번 실감.

▼순안공항 보이자 환호▼

○…남북직항로를 따라 날던 비행기가 북녘땅에 들어서자 “야, 이북 땅이다”라는 환호가 터졌고 창가엔 3, 4명씩 몰려들어 반세기만에 찾아온 고향산천을 보며 감회에 젖는 분위기.

고려항공 여승무원들은 방문단에게 음료와 간식을 제공하며 “불편한 것은 없느냐. 더 필요한 것은 없느냐”며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모습.

마침내 창밖으로 순안공항의 모습이 보이자 기내에서는 또 환호와 함께 박수가 터졌다.

○…오후 1시경 방문단이 탄 고려항공 비행기가 서서히 김포공항을 이륙하자 기내 스피커에서는 “오매에도 그립던 혈육을 찾아 고려항공의 첫 직통항로에 오르신 동포 여러분들을 열렬히 환영합니다”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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