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육탄전 이후…與 "가결" 野 "무효"

  • 입력 2000년 7월 24일 20시 00분


‘가결이냐 무효냐.’

24일 국회 운영위에서 민주당의원들에 의해 국회법개정안이 ‘육탄전’ 끝에 단독 상정 및 처리된 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처리과정의 적법성 문제를 놓고 또다시 논란을 벌였다.

당시 상황이 이런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여야가 격돌하면서 정균환(鄭均桓)운영위원장으로부터 사회권을 넘겨받은 천정배(千正培)수석부총무가 한나라당 의원들에 의해 마이크를 빼앗긴 채 육성으로 안건을 상정, 처리를 하는 바람에 그의 목소리가 정확히 들리지 않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당시는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험악한 분위기였다.

특히 속기사가 기록한 운영위 현장 속기록에도 ‘운영위 개의를 선언한다. 의사일정 제2항 국회법개정안을 상정한다. 제안설명과… 되었음을 선포한다’고만 돼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측은 적법하고 유효한 행위였다는 입장이다. 박병석(朴炳錫)대변인은 “천수석부총무가 ‘개의선언→상정→원안처리선언→방망이 3타’ 등 국회법이 정한 소정의 절차를 거쳤다”며 “설사 방망이가 아닌 손바닥으로 두드렸다해도 효력은 변함이 없다”고 주장했다. 다른 민주당 의원들도 “회의장 내에서 천수석부총무가 상정 및 가결선포하는 것을 내 귀로 똑똑히 들었다”며 가결이 분명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천수석부총무의 날치기 처리가 국회법이 정한 회의 진행절차를 완전히 무시했다며 원천 무효를 선언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정창화(鄭昌和)총무 등은 특히 “당시 상황을 가장 정확히 알 수 있는 속기록에도 ‘가결선포’라는 말이 없고, ‘이의가 있느냐’는 최소한의 의사확인 절차마저 거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또 “천수석부총무가 방망이는 물론 손바닥으로 친 적도 없고, 대신 옆에 있던 비서관이 손바닥으로 두드렸다”고 말했다.

여야의 이런 논란에 대해 유권해석을 해야 할 국회사무처 의사국마저 여야의 눈치를 보며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의사국의 한 관계자는 “상임위 회의진행은 해당 상임위 입법조사관실에서 맡고 있다”며 “우리는 운영위 회의에 직접 종사하지 않았고, 짧은 시간 내 혼란이 계속돼 판단이 어렵다”고만 말했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JP의 '리모컨'▼

“도대체 누구 말이 맞나.”

민주당이 24일 국회 운영위에서 국회법 개정안을 날치기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22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와 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간 골프장 회동의 ‘해석’을 둘러싼 공방이 뜨겁다.

정균환(鄭均桓)총무는 “우리는 이총재와 김명예총재와의 골프장 회동에서 교섭단체 완화에 대한 이면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민련 오장섭(吳長燮)총무도 이날 국회 운영위에서 몸싸움이 발생하자 “두 분이 만나기 전에 한나라당에서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15명으로 하자는 얘기가 전달됐는데 총무단이 윗선 사정도 잘 모르고 반대만 한다”고 거들었다.

이에 한나라당은 “날치기를 한 뒤 비열한 ‘누명 씌우기’를 하고 있다”며 분을 참지 못하는 표정이다. 회동 중재를 맡았던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부총재도 “악랄한 거짓말”이라고 비난했다.

정황증거로 판단할 경우 22일 골프장 회동을 전후해 교섭단체 얘기가 정식으로 거론됐을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실제로 한나라당 권철현(權哲賢)대변인과 주진우(朱鎭旴)총재비서실장은 JP와 이총재만 남겨놓을 경우 나중에 엉뚱한 말이 나올까봐 회동 자리에 끝까지 배석하기도 했다.

다만 그동안 적대관계였던 JP와 이총재가 ‘사이좋은 모습’을 보인 것을 놓고 이총재가 마치 교섭단체 요건 완화를 들어주기로 한 것처럼 민주당과 자민련이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주장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JP의 노회한 양동(陽動)작전에 한나라당이 당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또 JP가 외연을 넓히려는 한나라당 이총재의 골프회동 제의를 덥석 받아들인 뒤 “정치에는 영원한 적이 없다”고 운을 뗀 것이 결과적으로 민주당측에 ‘국회법 통과를 빨리 해주지 않으면 헤어질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즉 두 사람의 회동에 마음이 급해진 민주당이 24일 날치기를 강행했다는 것.

어느 쪽이 맞건 이날 자민련 의원들은 “JP는 역시 정치 9단”이라며 탄복하는 모습이었다.

<공종식기자>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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